<인터뷰> 이헌 오페라가수

이헌 오페라가수 ⓒ이연수 기자

“나는 인천출신(I am from incheon) 오페라가수이다”라고 당당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밝히는 성악가가 있다. 한 때 ‘세르비아국민(띠고)가수’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발칸반도의 별로 활동하던 그는 현재 인천에 거주하면서 남구 학익동에서 ‘필리아치’카페 및 ‘행복나눔네트워크’ 커피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길렀고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두 딸을 기르고 있는 곳, 인천을 적극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멋진 '인천인'이기도 하다.

그는 또 이런 꿈을 꾼다. 언젠가는 인천에 들어설 세계적인 오페라전용극장에서 ‘인천시민(띠고)가수’로서 멋진 연주를 펼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그가 믿는다, 그의 이름은 이헌(43)이다.

4일, ‘필리아치’ 카페를 방문했다. 그가 내려준 커피는 오랫동안 따뜻했고 향이 깊었다.

◆오페라가수 이헌

오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작곡되는(durchkomponiert) 것이 본래이며 대사에 음악을 붙여 독창자와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된다. 오페라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복잡한 종합예술이다. 음악적 요소는 물론이고 문학적이고 시적인 요소(대사), 연극적 요소(극으로서의 구성, 연기), 미술적 요소(무대장치, 의상), 무용적 요소 등이 결합된 것으로 극적인 것과 음악적인 것을 잘 조화시켜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특히 아름다운 선율 아리아에 감정과 연기를 녹여내는 독창자(주연)의 연주기량에 따라 오페라 극의 감동은 배가 된다.

이헌은 모든 성악가의 최종 목표인 오페라가수(독창자)가 되기 위해 연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250대 1 경쟁을 뚫고 독일 만하임 시립음대 오페라과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수업만으로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해갈되지 않았다.

그는 ‘가면 속의 아리아’에서처럼 매일 스승에게 일대일 렛슨을 받으며 오페라가수로 성장하고 싶었다. 그는 마침내 어렵게 입학한 만하임 시립음대를 그만두고 은퇴하는 불가리아 출신 스승을 따라 불가리아 땅을 밟는다. 그리고 그가 열망했던 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스승에게 일대일 오페라 렛슨을 받는 꿈같은 일상이 이어진다.

그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는 불가리아에서 오페라가수로서 대성공을 거둔다. 당시 한국에서도 여러 일간지 및 방송사에서 ‘떠돌이 성악가 동유럽에서 득음하다’란 내용으로 대서특필됐다.

그러나 늘 오페라에 대한 배움에 목이 말랐던 그는 유명세를 접고 다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부를 재개한다. 그러나 이미 유명세를 탄 그를 그냥 놔 둘리 없었다. 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와 연결이 닿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에 '카르멘' 남자주인공역으로 초빙됐다. 그는 단 한 번 맞춰보는 것을 끝으로 제너럴리허설(실제 공연과 같은 리허설)과 1,2차 연속공연을 대성공으로 이끌었다. 철저하게 준비된 오페라가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시작해 연속 매진행렬을 기록하며 오페라가수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가 38살이 되던 해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비보에 고민하던 그는 예약된 공연을 마저 소화하고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헌은 그렇게 오페라가수에서 인천 소시민으로 돌아왔다.

◆인천인 이헌

“극장은 곧 도시의 얼굴”이라며 이헌은 "인천이 인구 300만을 자랑하는 대도시로 부상했지만 질적인 성장은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마다 대도시에는 오페라 전문 극장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며 “개관을 앞둔 인천 송도아트센터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가수를 극장장으로 추대해 한 1년정도만이라도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인천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페라극장으로 거듭날 것이다"는 말로 인천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의 말대로 오페라전용극장이 되기 위해서는 관현악단을 포함한 연주자 100여명 이상이 전속으로 상주해야 한다. 더군다나 오페라는 일반 시민들에게 아직까지는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다. 당연히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헌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기업이나 시 행정이 시민의 수준 높은 정서함양 및 인천 출신 음악인에 대한 관심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초기에 발생하는 적자규모를 메꾸고 가치와 이익을 창출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라이브라는 특성(같은 작품이라도 연출자나 연주자가 바뀌거나 같은 연출이나 연주자라도 공연 당일 연주자의 컨디션 및 기량에 따라 매 무대마다 다른 감동을 주는)을 이용해 한 작품을 꾸준히 공연하게 되면 무대장치 및 의상에 따르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지하 공간이나 공연이 없는 날 비어 있는 무대 공간은 음대를 졸업한 음악인들이 해외 유학을 통하지 않고도 실질적인 오페라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음악학교로 활용한다면 수익창출 뿐 아니라 가치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반인들이 참여해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제공한다면 도시와 도시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극장 주축 가치확산을 통한 선순환구조가 충분히 만들어 질 수 있다.

선순환구조가 되면 공연 수요자는 늘어나게 되고 시민의 문화적 잠재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더큰 수요를 일으키게 된다. 또 음대를 졸업한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더 이상 보험회사나 카페로 내몰리지 않아도 된다. 더불어 인천시는 인구만 늘어나는 베드타운이 아닌, 문화와 예술이 살아 움직이고 이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진 시민들 스스로가 만든 세계적인 문화부흥도시가 될 수 있다.

이헌은 타고난 인천인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는 타고난 오페라 가수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오페라 가수가 아니다. 그가 인천에서 커피사업을 해서가 아니다. 그가 사랑하는 인천에는 아직 그가 설 수 있는 오페라전용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삶! 너는 오페라!

이헌은 ‘트렌드’란 말이 싫다. 그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삶 자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단 한 순간도 그의 삶에서 그가 주인공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그가 형제자매 없이 귀하다는 외아들로 자라서가 아니다. 다만 트렌드에 함몰되는 순간 주인공에서 밀린다는 것을 스스로가 너무도 일찍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이헌은 세대교체가 한차례 더 이뤄진다면 한국 음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외국에서 극장경험을 풍부하게 한 30~40대 음악가들이 교육현장에서 주도적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곧 그와 그들이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병폐를 걷어내고 음악계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람이 진짜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말이죠, 사랑하는 그 사람을 잘 관찰하고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애쓰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잖아요. 오페라가 나한테 그래요. 계속 보고 관찰하는 거예요. 오페라를 말이죠. 그리고 오페라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고 오페라가 좋아하는 행동을 연습하는 거죠.(침묵) 나는 매 순간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임 프롬 인천(I am from incheon) 오페라가수 이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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