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기문 사랑의네트워크 이사장 '실천'강조

▲ 이기문 사랑의네트워크 이사장 ⓒ이연수기자

 “젊은 시절부터 봉사활동에 대한 이상이 있었으나 명예와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 사회적 현실에 쫓겨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더 나이가 들어 후회하기 전에 제대로 실천해 보고자하는 마음으로 3대 이사장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나눔은 크게 보면 인천시민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 감사하고 기쁩니다.”

지난 3일 ‘사랑의네트워크’ 제 3대 이사장에 취임한 이기문(64) 전 국회의원이 특히 강조한 말이다.

사랑의네트워크는 2001년 9월 교육봉사단체 설립 발의를 시작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인사, 일반인들이 후원기부나 재능기부 그리고 인력기부 등으로 지난 18년 간 꾸준히 사랑나눔을 이어왔던 인천을 대표하는 봉사단체이다.

이 단체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한 이기문 사랑의네트워크 이사장은 인천 출신으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도 중앙대학교 선호장학생 선발고사에 합격해 4년 내내 장학생으로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그는 사법시험 8연패의 좌절을 겪기는 했지만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해 약자의 편에 서는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인천지역사회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었고, 그러한 활동이 계기가 되어 1996년 15대 국회의원(계양·강화갑)으로 정치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정치활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큰 그림을 먼저 그리는 정치적 감각 등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는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을 역임했다.  당시 정권교체를 위한 DJP연합을 건의해 결과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인권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특히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인권위원장으로서 진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정치적 지형이 바뀌고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겹쳐지면서 1999년 3월 12일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정단상을 떠나게 된다.

이 이사장은 “정치적 희생양으로 지목돼 의정단상을 떠났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더욱 단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며 “인천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에 입학해 경영학 석·박사과정을 모두 마칠 수 있었고 사회통합과 변화의 가능능성을 여는 시각이 열렸다”는 말로 당시를 술회했다.

이후 그는 2002년 청렴성, 합리성, 개혁성, 창조적 비전과 능력 등을 인천시장 후보선택 기준으로 내세우고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 당내경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으나 아쉽게 탈락했다.

다시 2009년 인천 시민들의 소리를 듣고 인천의 미래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인천의 택시운전사로 나서는 등 인천시장 재도전 의지를 다졌지만 당초 출마를 권했던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송영길 의원이 마음을 바꿔 본인이 직접 출마를 선언하면서 인천시장에의 꿈을 다시 접었다.

이렇듯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격동기 덤불을 헤쳐 나오며 새겨진 생채기는 당시를 회고하는 그의 표정과 음색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이 이사장은 “시장으로 나설 당시, 대한민국 경제아이콘으로 키울 수 있었던 송도국제도시에 대해 품었던 큰 그림을 영원히 놓친 부분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많이 아쉽다”며 “정치인들은 50년, 100년 너머까지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다가오는 6·13지방선거에서 출마의지를 밝히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바람을 표명했다.

그는 이어 “인천고등학교 동창회장이 공적으로는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면서 그동안 인천고등학교 123년 역사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인물들을 모아 ‘인천고 인물사’ 편찬을 주도해왔다”며 “그 과정에서 인천고 강선영 운영위원장을 만나 인천고 뿐 아니라 인천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맡게 된 만큼 모두가 행복한 인천을 만드는데 남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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