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인천뉴스=이연수기자] “태극기가 국기로 최초 공식적으로 사용된 지역이 바로 인천입니다. 학계에서도 국기로 사용된 최초의 태극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박영효 수신사가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만든 태극기가 아닌, 이보다 4개월 앞선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사용됐던 태극기라고 이미 수정, 결론 내린 상태입니다.”

강덕우(62)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이 한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대해 설명하며 특히 당시 국가 대 국가, 동등한 입장에서 상징성을 지니고 사용했던 태극기의 역사를 짚어내며 특히 강조한 말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1882년 5월 22일 서구 제국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특히 일본의 술책으로 무관세로 진행되던 관세를 7년 만에 바로잡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천에 관세 행정을 전담하는 해관(海關)과 이를 감독하는 감리서가 설치되는 등 당시 중국이나 일본이 서유럽 제국과 맺은 조약에 비해 불평등이 어느 정도 배제된 주권국 간 쌍무적 협약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 조약이다.

인천지역사회는 그간 1959년 이후 동구 화도진으로 알려졌던 조약식 진행 장소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아, 사료(-월미도 부근에 정박한 배에서 조인장소가 보이는 곳-)를 근거한 자유공원 아래 제물량로 232번길 23의 옛 세관장 사택 자리로 확정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

강 전문위원은 이에 대해 “인천시와 지역사회가 조인 장소 오류 수정 등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당시 태극기를 국기로 최초 사용했다는 의미 부여에는 소홀했던 점이 있다”며 “이제라도 태극기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이 인천 시정에 적극 반영됐으면 한다”는 말로 안타까움 그리고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1876년 강화도조약 당시 태극기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태극기는 1882년 조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등 통상조약을 맺을 때마다 사용됐다”며 “이는 해양도시를 꿈꾸었던 최초의 도시였던 인천이 향후 정체성의 기틀을 다지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전근대 역사문화도시 인천은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진 산업 역군의 도시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축소판이다”며 “바닷길, 땅길, 철길, 하늘길이 열린 국제도시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인천의 역사를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전문위원의 말에 의하면 인천의 역사는 한국사(중앙)에 묻혀, 채 드러나지 않은 역사가 무궁무진하다. 인천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된 것도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인천의 역사를 연구하고 발굴하며 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오늘(18일)을 끝으로 18년 동안 몸담았던 역사자료관을 떠난다. 그러나 2000년 6월 인천시사 편찬을 위해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후 오늘날까지 한결같은 자세로 한 자리에서 묵묵하게 소임을 다해냈던 그의 마음이 썩 가볍지만은 않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있는 반짝이는 인천의 역사가 곳곳마다 산재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40여 년 축적된 지식이 어딜 가겠냐”며 “앞으로도 개항장연구소 활동 등 인천의 역사와 인천의 발전을 위해 힘닿는 한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인천시 역사자료관은 2001년 발족 이래 내 고장의 역사를 발굴, 연구, 보급하는 데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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