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hr35
  • UPDATE : 2018.8.15 수 13:50
ⓒ1998 남동신문 창간 → 2003 인천 최초 인터넷신문 인천뉴스 창간
상단여백
HOME 이성진 교사의 잊혀진 인천이야기
[연재3] 조선기계제작소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 1945년 해방 직후 조선기계제작소 잠수함 건조 도크 출처: 화도진 도서관

예나 지금이나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회사는 일류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육군의 요청을 받고 6척의 잠수함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도크가 건조할 조선기계제작소는 잠수함 건조 경험이 없어 우선 기술자를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가와사키(川崎)공업에서 경험을 쌓은 권위자를 초빙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육군의 기밀인 각종 잠수함 설계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자재를 원활하게 입수하기 위해 만주(중국 동북부)의 안산 쇼와 제강소(昭和 製鋼所)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좀처럼 일본 육군의 정식 발주가 없었다. 조선기계제작소 내부에서는 “역시 육군이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게 이상하다. 군대 안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었던 게 아닐까. 차라리 거절해 버리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발주가 지연된 것은 히타치 카사도(日立 笠戶) 공장에서 건조되고 있는 ‘마루유’ 1호의 시운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하였다. ‘마루유’1호는 1943년 10월에 준공되어 연말에 밀려 12월 30일에 야마구치현 야나이 베이에서 잠항 시험을 실시하였다. 시험에는 일본해군 관계자도 초대되었다. 육군 참모본부는 일본해군에 기밀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잠망경을 발주하면서 해군에 알려졌던 것이다. 잠항시험은 기기의 제어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침에 함수가 가라앉고 함미가 떠오르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그렇게 하면 함체가 물 속에 완전히 가라앉았다. 해군 관계자는 “가라앉아 침몰한다. 연습중지!”하라고 아우성을 하였다. 육군관계자들은 만세 삼창을 불렀다. 해군 잠수함은 앞으로 나가면서 잠수하는 반면에 ‘마루유’는 정지 상태에서 잠수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군의 인식은 달랐기 때문에 실제로는 성공한 것이었다.

일본 육군이 조선기계제작소에 정식 발주를 한 것은 1944년이 되어서였다. 요코야마 사장이 인천조병창으로 불려갔다. 와케 타다후미(和氣忠文)인천 조병청장(육군소장)은 직접 잠수함 건조 요청을 하며 기술 장교에게 계획 내용을 설명하게 하였다. 본격적으로 잠수함을 그려온 일본 육군은 오랫동안 잠수함을 구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설명 내용은 조선관계제작소 관계자를 크게 실망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 1948년 부평조병창 전경 출처: 시사인천 한만송

또한 조선기계제작소 입장에서는 크게 이익을 바랄 수 없었다. 인천조병창 기술 장교의 설명에 따르면 ‘마루유’건조가 한 곳에서만 전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체와 화포는 오사카 조병창(武器 製造倉), 광학 병기 및 음향 장비는 도쿄 조병창(武器 製造倉), 엔진 등 기관은 사가미 조병창(武器 製造倉)에서 각각 생산하면 오사카 조병창(武器 製造倉)에서 수합해서 인천으로 보내서 조선기계제작소는 다른 부분을 만들어 완성시키라는 지시였다. 또한 내압 격벽 재료는 전차용으로 만든 16mm의 장갑판을 지급한다는 말도 했다.

▲ 오사카조병창(1932년) 출처: 민족문제연구소

육군 제7연구소가 발안한 혁명적 조선법인 블록공법에 관한 설명도 있었다. 블록공법은 함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공장에서 만들고 드라이 도크에 모아 리벳으로 연결해 조립하는 방식이다. 블록공법은 생산성이 매우 높았지만, 일본 대형조선회사에서 전후 고도성장이 끝난 뒤 세계 굴지의 조선회사와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서 철퇴를 맞았다. 그렇지만 이마바리조선(常石造船)이 크게 도약한 것은 블록공법을 철저하게 채용한 결과라는 것을 의외로 모르고 있다. 조선기계제작소에서 건조한 첫 번째 ‘마루유’는 1944년 4월 착공하여 불과 4개월 만인 8월에 준공, 진수하였다. 첫 번째 마루유는 ‘마루유 3001’로 명명하고 일본 육군에 인도하였다. 그러나 ‘마루유 3001’ 잠수함에게는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처: 요시하라 이사무(吉原 勇) 著 ‘仁川の 七十年’ 2018.4.17.

 

필자 소개

요시하라 이사무(吉原 勇)

1938 년 경기도 출생. 마이니치 신문 경제부 기자, 편집 위원, 下野新聞社 이사, 作新学院大学 강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특명 전근」(문예 춘추사) 「내린 일장기」(신쵸 오샤) 등.

2018년 5월 19일 인천을 방문한 요시하라 이사무씨로부터 번역 게재 허락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일본어 교육전공 이태영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번역하였음을 밝힙니다.

손경옥 기자  press@incheonnews.com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손경옥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HOT ISSUE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