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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똥이야기] 내 똥 이야기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 [똥지게와 똥통] 출처: 오마이뉴스 이승철 2010.01.15

인천 토박이에게 똥애기를 하면 즉각 “똥바다”, “똥고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에 얽힌 푸짐하면서도 애잔한 똥에 얽힌 개인 얘기가 나옵니다.

필자는 고향 대전 목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집 가까이 대전형무소가 있었습니다. 높은 하얀 회벽돌 담이 둘러싸여 있어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넓은 운동장이 있고 소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놀기가 좋았기 때문에 자주 갔습니다. 언덕 위에 있어 그 아래 논과 밭을 볼 수 있었습니다. 봄이 되면 형무소 언덕으로 아주 진한 똥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밭 한가운데 똥구덩이가 있어 일 년 내내 똥물로 가득했습니다. 군인 하이바로 만들거나 철모로 만든 똥바가지로 군용 배낭끈을 메달은 나무통에 푹 썩힌 똥물을 담아 밭에 뿌렸습니다. 대전천으로 물놀이를 갈 때 짱돌을 주워서 햇볕을 받아 두꺼운 똥층이 생겨 그 똥층을 깨기 위해 돌에 힘껏 던졌습니다. 그러면 돌이 박혀 똥물이 튕겨 나오는 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밭고랑을 지나갈 때는 똥찌거기가 있었고 어떤 때는 신문지 조각도 볼 때도 있었습니다.

필자의 외가는 박정희전대통령 고향 구미 상모동 바로 아랫동네에 있었습니다. 당시는 선산군 구미읍 사곡리. 구미공업단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평범한 농촌이었습니다. 외가에 가면 정말 좋았습니다. 외양간에 가면 소가 있어 여물 줄 때 먹는 모습 그리고 다시 우물거리는 모습 등이 신기했습니다. 외가는 마을에서 언덕으로 올라오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전원주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공포의 공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뒷간이었습니다.

엄청 큰 똥항아리 위에 둥근 소나무를 올려놓아 자칫 발을 잘 디디면 빠질 수 있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냄새는 집에서처럼 고약하지는 않았지만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뒷간에 들어가지 않고 옆에서 그냥 똥을 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면 개가 와서 맛있게 핥아 먹었습니다. 예뻐서 얼굴로 비비고 안아줬던 그 개가 똥을 맛있게 핥아 먹는 광경은 엄청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개가 달려들면 기겁을 하고 도망치거나 소리를 쳐서 내쫓았습니다. 뒷간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재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큰 외삼촌이 설계한 재뿌리는 부삽을 직접 대장간에서 만들어 와서 사용해 아궁이에서 나온 재를 나무통에 넣고 똥을 싼 다음 뿌렸던 것입니다.

몸이 왜소하고 약했던 큰 외삼촌은 방안에서 약재를 작두에 써는 일을 하고,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인 외숙모는 나무똥통에 똥을 퍼 담아 똥지게 양편에 걸어 밭에 나가 똥바가지로 뿌렸습니다. 똥냄새는 고통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외가를 생각하면서 시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외숙모 두꺼운 팔로

똥바가지 푼 똥은

그냥 밭에 내던집니다.

 

나는

냄새도 고약해

코를 막습니다.

 

외숙모는

아무렇지 않게

부엌으로 들어가

 

쌀도 씻고

된장찌개도 끓이는

외숙모.

 

옆에 가면

아직도

똥냄새가 납니다.

 

밥을 먹으며

코를 대고

끙끙거리면

 

외사촌 누나는

“야가, 왜 이랗노?”

핀잔을 줍니다.

 

된장찌개에서

똥냄새가

심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똥물로 된장찌개를 끓여 먹지?“

 

*된장찌개는 청국장 찌개였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쓴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보다는 훨씬 거칠게 썼을 겁니다.

인천뉴스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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