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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길 작가의 수필 '순정이'
▲ 서부길 작가

 순정이는 만화 같은데 나오는 눈이 크고 마음씨 여린 소녀 이름 같다. 부모를 여의고 어느 집에 맡겨져 시련을 극복하고 드디어는 훌륭한 배필을 만나는 신데렐라 소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순정이는 생긴 모양과는 달리 「밴댕이」를 지칭하는 인천지방의 방언이다, 작은 몸체에 비해 눈이 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서양에서도 “Big Eyed herring"이라고 부르며 눈이 큰 물고기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일본, 동남아 등에 분포하며 지방에 따라 뒤포리, 납시구, 자구리 등으로 부른다. 1년 중 5~7월이 산란기라 기름지고 맛이 좋아 이때가 횟감이나 구이로 좋은 계절이다.

요즘같이 해가 일찍 저물어 스산한 저녁이면, 대포 생각이 간절하여 따끈한 청주에 몇 점의 생선회와 서덜탕이라도 곁들이면 하루의 피로를 쉽게 잊을 수가 있다.

시장기가 돌 때나 불현듯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날 때 나는 주로 생선회가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먹어본 음식의 소화효소가 몸 안에 축적되어 자극하는 현상이라는데 양식하는 어류도 치어(稚魚) 때 먹이만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생선을 즐겨먹었고 나이가 들면서도 연하고 담백한 맛을 잊을 수 없어 회를 비롯한 생선 조리 음식을 습관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얼마 전 즐겨 찾던 신포시장 내 여러 횟집을 둘러봐도 중국산 홍민어뿐, 흰 빛깔의 순수 우리 민어는 보이지 않고 자연산 광어도 제철이 아니라 구경할 수가 없는데 한두 마리 있는 것이 천정부지로 비싸 입맛만 다시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시사철 저온 창고에 보관하여 쉽게 먹을 수 있는 밴댕이 전문집이 있어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었다.

15㎝밖에 안 되는 몸체 양측 편의 살 쪽을 기술 좋게 저며서 회로 푸짐하게 내놓고 간장과 계자, 초고추장과 상추에 싸서 먹는데 아무래도 밴댕이 고유의 맛을 즐기려면 식초 탄 매콤한 풋고추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것이 비린내도 가시고 훨씬 고소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그 조그만 놈이 어디에 살이 있을까? 하지만 솜씨 좋은 손놀림에 윤기 자르르 흐르는 은백색의 매끈한 피부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고 입맛을 당기기에 충분하다.

예전에는 배 타고 바다에 나가면 밴댕이는 인천 앞바다 어디에서나 그물마다 넘쳤다 때로는 너무 많아 신선도가 조금 떨어진 것은 바다에 그냥 던져 버리면 갈매기 떼가 끼룩대며 배 꽁무니를 쫓아오다 날쌔게 채간다.

노을이 곱게 지는 하늘 아래 사람과 자연이 빚어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일을 마치고 귀항하며 우리들은 갑판 위에 앉아 물 좋은 밴댕이를 골라 숭덩숭덩 썰어 손으로 집어먹곤 했다. 양재기에 부은 소주가 몇 순배 돌고 나면 혀끝이 알싸하고 눈가가 맵싸한 것이 몇 점의 밴댕이로는 성이 안 차 벌겋게 버무려 물회로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취기가 덜했고 숙취도 없었다. 아마도 신선도가 좋은 밴댕이 물회에다 맑은 공기, 부드러운 바람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그러지 않나 생각된다. 어떤 친구는 대통령도 먹을 수 없는 싱싱한 맛이라고 극찬하기도 하고 누구는 예술이라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우리 서민이 즐기는 특미로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 아욱국, 끓이는 냄새와 더불어 밴댕이 굽는 냄새 또한 근사하다. 둥그런 드럼통 연탄 화덕 불 위에 굵은소금을 훌훌 뿌려가며 구워지는 밴댕이 몸에서 노란 기름이 배에 나오고 지글지글 거리며 익어간다.

연탄불에서 나오는 가스를 반은 입으로 반은 코로 마시며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밴댕이 꼬리를 잡고 후후 불어가며 살을 발라먹는다. 달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이때쯤 둥그렇게 앉은 주당들은 서로 더 먹으려고 부산스러워지는데 마음 터놓고 회포 풀던 서민들의 정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도 흔히 하는 말 중 “밴댕이 소갈딱지나 소갈머리, 밴댕이 X구멍, 이라고 하여 마음이 넓지 못하고 속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에 비유하고 있다.

아마도 몸체가 적고 측편인데다 아래턱이 얄팍하여 풍성하지 못해 그런 것 같은데 실제로도 겁이 많고 성질이 급하여 그물에 걸려 나오자마자 죽어버리는데서 유래된 것이 정설인 듯싶다. 밴댕이한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뭇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뜻으로 위안을 삼으면 어떨는지.

예전부터 밴댕이는 잡어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여 냉장고가 없던 시절 우리 집 앞마당에는 오뉴월 볕에 밴댕이 말리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되었고 알이 불거져 살찐 놈은 서민들 초여름 입맛 돋우는데 제격이었다. 그러나 기름이 많아 오래 보관할 수 없던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또한 일시에 많이 항구에 들어온 밴댕이는 어묵공장에서 밀가루, 전분 등과 섞어 고기풀을 만들고 덴부라용 어묵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일 많이 쓰인 곳은 전통적으로 만들어오던 젓갈로 쌈장용이나 김장양념 그리고 겨우내 밑반찬으로 보관하였다.

지금은 액젓으로도 숙성시켜 상품화하고 있는데 특히 강화도에 전승되어오는 순무 섞박지는 액젓과 젓갈을 넣어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자주 찾는 강화특미의 하나다. 순무김치와 밴댕이가 어우러져 겨우내 잘 삭아 싱싱하게 감칠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잡어로 취급되던 밴댕이도 점차 용도가 많아진 데다 매립과 환경공해 등으로 인천 연안에서는 자취를 감췄고 먼바다에 나가 험난한 파도와 싸우며 잡아오다 보니 그 값도 웬만하여 이제는 인기 있는 생선이 되어가고 있다.

때문에 예전처럼 포식하지 못하는 요즘 서민들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최근 서해상에 새로운 밴댕이 어장이 발견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덧 밴댕이도 귀하신 몸이 되어 곱게 맞이할 차례가 되었나 보다.

 

편집부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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