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길 작가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말이 있다. 넓은 바다에 ‘조 한 알’이란 뜻이니 매우 작은 존재를 의미하지만 그만큼 바다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내겐 그 바다, 한편의 갯변두리마저 어려서부터 친근했고 추억의 산실이 되어 늘 애착을 갖게 된다. 갯벌 가에서 나고 자라면서 거의 오십 리까지 드러나는 갯벌에서 조개잡이와 망둥이 낚시를 하던 기억. 갯벌에서 친구들과 뒹굴던 생각, 그 정겹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회색빛의 싱싱한 갯벌은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럽고 구수하다. 토인 마냥 온몸에 개흙을 칠하고 뒹굴다 보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개흙을 바르지 않은 부위는 따가운 햇살에 벌겋게 데이게 되니 개흙은 천연 보습의 ‘머드팩’이라고나 할까.

갯마당은 어린 시절 학교운동장과 함께 즐거운 놀이터였고 꿈을 키워주던 터전이었다. 온종일 노닐다 석양녘이면 수연한 밀물소리와 물새들의 울음을 뒤로 땀에 젖은 옷가지를 걸치고 귀밑에는 허연 소금기를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갯벌은 만조 때는 바다가 되고 간조 때는 육지가 되는 죽은 듯 고요하고 황량하지만 그 속에는 정중동(靜中動)의 세계가 펼쳐져 갯벌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갓 태어난 어린새끼에게 제 몸을 뜯어 먹이며 죽어가는 모성애 지극한 어미 낙지와, 소라 껍데기 속에 알을 낳으러 들어간 주꾸미도 있다. 풍선 같은 물질을 띄우며 물속에서 이동하는 조개들, 먹이를 찾아 쉴 새 없이 개흙을 씹어대는 게들의 합창 소리와 뱉어 놓은 수만 개의 흙탑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맛 좋은 바지락, 가무락, 소라, 고동 같은 조개들과 꽃게, 박하지게, 칙게, 새우 같은 갑각류와 갯지렁이, 말미잘, 민챙이 같은 것들도 있다. 그리고 망둥이, 숭어. 전어 같은 어류들이 저마다 삶의 터전을 가꾸며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육상에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오염물질의 천연하수처리장으로 침적과 정화, 홍수조절, 해안침식방지, 경관자원과 물새들의 보금자리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로서 그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가 없다.

지구 생태계의 0.3%에 불과하지만 그 가치는 5%에 달하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농경지의 일백 배. 숲의 열 배에 이른다고 영국과학잡지 ⌜Nature. 1997년⌟ 는 밝히고 있다.

서해안 갯벌은 미국 조지아, 캐나다 동부해안과 아마존하구, 북해연안과 더불어 세계 5대 갯벌에 속한다. 프랑스 영화 ⌜남과 여⌟의 무대가 되었던 도빌 연안의 금빛 모래 갯벌에서 주인공이 말을 타고 달리던 그림 같은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에 비해 우리 갯벌은 수천만 년 전부터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가 퇴적되어 특이한 갯벌로 진화된 진흙과 점토로 되어 있어 생물서식의 보물창고로 꼽히고 있다.

인천 시내 중심가 곳곳의 대형건축물 기초굴착공사장을 보면 거기에는 여지없이 개흙이 나온다. 실로 수십 년, 아니 백여 년의 바다가 거기 있었음을 본다. 시간이 멈춘 듯 그곳에는 아직도 생생한 개흙이 숨 쉬고 있다. 그것은 개항이래 부단히 이어져온 인천의 발전사라는데 이견은 없다. 도시 면적의 34%가 과거 바다 갯벌 지역이었으니 인천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지금도 개발이익과 사업성과만 추구하는 세태 논리에 밀리고 매립이란 중병에 걸려 떡 조각 베어 먹듯 갯벌은 야금야금 사라져 가고 있다.

서해안 중에서도 인천 앞바다는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9미터나 되어 광활한 간석지는 첨단기술과 장비가 있는 오늘날 간척 사업의 최적지로 꼽힌다. 또한 수도권이라 땅값도 비싸 매립공사라면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가 있는 곳이다. 이것이 인천 바다의 숙명적 비극이 아닐까.

지난 시절 수많은 정치권력 실세와 기업들이 거저먹기로 차지하고는 오늘날에 용도 변경하여 대단위 아파트 조성으로 천문학적 부(富)를 챙기고 있다.

덕분에 광역시중 면적이 제일 넓고 인구는 부산 다음이니 서울, 부산에 이은 3대 시세(市勢)를 차지하게 되었다. 매립과 함께 지금처럼 인구 유입이 가속화 된다면 아마 부산시도 넘볼지 모를 일이다.

다만 그에 따른 도시기반시설, 교통, 상하수도 등 인프라 구축과 편익시설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열악한 삶의 질은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유럽 선진국들은 간척사업을 일체 중단하고 기왕 만든 방조제마저 터놓으며 갯벌 살리는 노력을 한다니,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으련만.

이제 인천 연안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높은 축대로 둘러 싸여 갯벌 구경은 하기 힘들게 되었다. 1970년대 이래 송도 신도시, 청라지구, 쓰레기 매립장, 인천교, 소래지구, 공항건설 등 대규모 매립공사로 백두산 천지와 비슷한 여의도 면적(250만 평)의 열 배도 넘는 3천만 평의 갯벌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더구나 대단위 매립은 바다의 생명력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림은 물론 막대한 양의 돌과 토사를 공급하기 위하여 또 다른 육지의 환경파괴가 연쇄적으로 이어 지게 된다.

최근 인천만과 강화 갯벌에 조력발전 건설 계획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어느 외국 여행가가 신비의 극치라고 말했던 강화 갯벌마저 또다시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국토를 넓히고 개발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한번 사라진 갯벌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기에 졸속의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육지에서 반세기 동안 그린벨트를 설정하여 성공적으로 푸른 숲을 가꾸었듯이, 이제는 눈을 돌려 바다 갯벌을 국립공원화 하여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블루벨트를 만들어 효율적으로 보존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현명하고 똑똑한 후세들이 체계적으로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갯벌을 물려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것이 지금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주요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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