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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화 시인의 첫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출간리토피아

우중화 시인의 첫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가 리토피아에서 출간됐다.

우 시인은 2019년 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했으며 막비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시집에는 그가 다년간 시를 공부하면서 다듬어온 시들을 모아 수록했다. 그는 첵머리에 ‘바람이 붑니다. 아직 멈추지 않는 바람이 붑니다. 사람과 사람의 바람이…….’라고 적어 그의 시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토로했으며, 그가 노래하는 작품 방향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임을 암시하고 있다.

작품집 말미에 해설을 붙인 손현숙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우중화 시인의 시편들은 젖은 불꽃처럼 뜨겁고도 차갑다. 아마도 겨울 눈밭에 제 모가지를 부러뜨리는 붉은 꽃처럼 제 속을 제가 끓이면서 속절없이 시를 사는 듯하다. 

그녀의 시편 속에는 말과 사랑과 여자와 이별, 그리고 꽃들이 지천이다. 그런데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낮거나 높은 지점의 시선에서 머문다. 그리고 그런 낮거나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상념들은 슬픔으로 육화된다. 특히 그녀의 시 속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 우중화, 저마다의 풍경은 색깔과 소리가 동반된 그녀 특유의 파롤Parole이 형성된다. 말들로 지어진 그녀 특유의 세상에서 말, 즉 언어는 사회적이고 체계적인 측면의 랑그Langue를 조금 빗나간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파롤을 구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다양한 파롤, 즉 말의 구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녀가 세상을 완전히 등지거나 외면하지 않은 시인의 자세, 즉 랑그에 관하여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시집은 전체 79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주문을 푸는 여자

 

바싹 말라 화석이 된 멸치가 생생한 육수를 뿜어낸다.

건조한 아침 달래며 탱글탱글 살 오르고 비늘도 번뜩인다.

뜨거운 뚝배기가 그렇게 살지 못한 멸치를 끌어안는다.

밤새 말랑해진 말들이 풍덩풍덩 뛰어들며 뜨거워진다.

고등어 한 마리가 품어 온 바다가 온통 넘실거리며 웃는다.

화분 속 마른 꽃이 숭숭 썰어지다가 귀한 잎을 피워낸다.

짓이기던 말들이 밥이 끓듯 넘치며 잠든 풍경을 깨운다.

지난 밤 옹이를 박던 뜨거운 남자는 다시 탱글탱글하다.

밤의 주문을 풀고 박제가 된 나비를 뜯어 날린다.

 

고래를 잡는 남자

 

밤새도록 술을 마신 남자가 새벽바다에서 고래고래 고래를 잡는다.

혀 짧은 노랫말이 시소를 타다가 끝내 고래가 되지 못하고 술고래로 남는데,

사랑과는 거리가 먼 노래를 듣던 개가 담장 너머에서 웬 소리냐고 짖는다.

꾸역꾸역 토악질하는 담벼락 밑에서 막 피던 개나리꽃이 고개를 돌린다.

골목을 벗어나는 남자의 지느러미가 새벽 달빛에 꼬리를 기일게 늘이고,

미처 따라가지 못한 노랫말이 담벼락 틈새마다 틀어박혀 아직도 고래다.

 

이후로 오래

 

창을 두드리는 나무의 잎들을 뜯어낸다.

붉은 피가 고이고 밤새 신열은 끓어오른다.

갈잎 부딪쳐 마른 신음 들리는 밤은

살갗에 당신의 피부를 이식한다.

심장 속 덕지덕지 들러붙은 이름들을 벗긴다.

밤새 호송하는 시월의 밤이다.

혀끝으로 핥던 말 같지 않은 말들은 가슴속에서 꺼낸다.

심장에 박힌 모래알들은 오랜 시간 생채기를 만들어낸다.

굳은살 박는 한겨울 바람이 일고,

낯설어지지 않는 이름 어설프게 끌어안는다.

양순열 기자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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