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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똥이야기] 조선인 차별의 정당화 수단으로 한 ‘똥’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 사진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인 가옥의 변소는 바닥 밑에 그냥 흙바닥으로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똥만 남고 오줌은 땅으로 스며들거나 구멍을 통해 시궁창으로 흘러 나갔다. 아궁이 재를 똥에 뿌려서 악취와 부패를 막았다. 그에 비해 일본인 가옥의 변소는 바닥 밑에 넓은 똥독을 묻었다. 똥오줌이 차면 긴 자루가 달린 똥바가지로 퍼냈다. 경성부는 위생 및 전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로 조선인 가옥에서도 일본식 똥독이나 방수 처리한 나무통(석유 상자 등)을 묻도록 강제하였다.(아카마 기후, ‘대지를 보라’ p.36) 인천부도 만석동, 화수동, 송현동 일대에 일본인 주택이 생겨나면서 위생 및 전염병 예방 조치로 조선인 가옥에도 의무적으로 똥독을 묻도록 하였다.

일본인 가옥에 묻은 똥독보다 용량이 1/2 밖에 되지 않아 똥 수거를 7~10일에 한 번씩 해야만 했다. 분뇨수거업자 야스코우치는 일본인 거주 지역 중심으로 수거 처리를 하였다. 이에 반해 조선인 거주 지역은 제대로 수거 하지 않아 똥물이 차고 넘쳐 집안으로 흘러 들어와 악취가 진동했으며, 거리에 까지 넘쳐나 악취와 오물로 범벅이 되었다. 이에 조선인들은 인천부에 민원을 접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한 항의를 하였다.

또한 1937년 인천부에서는 일본인 거주지역은 인천부 직영으로 전환하고, 조선인 거주지역은 청부업자에게 맡겼다. 직영 구역은 수거 인부를 적정하게 배정하여 수거 작업을 원활하게 하였으나. 청부구역은 직영구역의 인부 1/2도 안 되게 배정하였다.

1932년부터 1938년까지 일본인 청부업자 야스코우치가 똥 수거 청부를 맡은 이후, 인천부내가 더 불결해졌으며 똥오줌 수거 적체, 인부들의 소제 무성의로 많은 민원이 발생했다.

“북부 조선인 주거지역에는 분뇨 소제를 하지 않아 산같이 쌓여있던 대변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가로변으로 흘러내려서 비위생은 물론 말할 수 없는 불편을 주므로 감독 부주의한 부당국(인천부)과 오물 청부에 대한 비난이 높다 한다.”(조선중앙일보 1936. 2. 10.)

또한 인부에 대한 처우 차별로 인부들의 동맹파업도 발생하였다.

“분뇨 처치 인부 50여명은 인천부로부터 청부받은 安河內(야스코우치)의 소속으로 전에는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노동하는 시간을 돌연 약 1시간의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임금은 올려 주지 않으며 부청 오물 소제부에게는 1개월 2회의 휴일이 있고 연말 상여금이 5원씩 있으니 그들에게도 그대로 대우해 달라고 요구한 것인데 이 소식을 들은 인천서 고등계에서는 곧 조정에 착수하여 1개월 휴일 1일, 연말 상여금 5원씩 받기로 하고 오전 11시부터 취업한다고 한다.(동아일보 1933.11.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부는 다른 입찰희망자와의 경쟁에서 야스코우치를 입찰함으로써 유착 의혹이 계속 제기되었다.

편집부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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