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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똥 이야기] 똥 오줌 수거 처리, 청부업자에게 위탁하기까지 과정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 똥지게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인천부는 1920년대 이후부터 인구가 급증하면서 도시는 계속 확장되었다. 1930년대 들어와서는 인천부가 급격하게 확장됨에 따라 똥오줌•쓰레기 수거 처리에 인부 증원, 말의 증가 등 설비의 증가가 시급했다. 1921년 똥오줌•쓰레기 청소 예산이 13,045원이었는데, 1930년에는 29,5100원으로 증액된 것으로 이를 입증한다.(역주 인천부사, 1933. p.1333)

1931년 7월 중일전쟁의 여파로 인천거주 화교 인구 1/2이 귀국하면서 인천부내 똥오줌•쓰레기 수거 처리에 비상이 걸렸다. 인천부 교외에서 채소 농사를 했던 화교들이 인천부의 똥오줌•쓰레기를 1/2 이상 수거 처리해 비료로 활용했기 때문이다.(역주 인천부세일반 1935-1936, p. 77)

일본인 거주지는 인천부 직영 인부들이 똥오줌•쓰레기를 수거 처리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천부 직영 인부가 수거 처리 똥오줌은 마차로 수거해 변두리 밭으로 반출해 농민에게 비료로 불하했다. 그렇지만 화교 거주지와 조선인 거주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대부분 화교들이 자유 수거 처리했기 때문이다.

당시 인천부의 호수는 10,451호(조선인 11,556호, 일본인 2,578호, 중국인 297호, 외국인 20호), 인구는 63, 881명(조선인 51,005명, 일본인 11,373명, 중국인 1,469명, 외국인 34명)으로 배출되는 똥오줌이 17,634석(1석당 180리터), 쓰레기가 3,368관(1관당 3.75키로)을 인천부 소속 청소감독 3명, 단속요원 4명, 인부 62명이 똥오줌•쓰레기, 청소까지 감당해만 했다. 다량 배출되는 똥오줌•쓰레기를 임시마차와 인부를 동원해 수거 처리하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엎친 격 덮친 격으로 화교까지 중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바람에 똥오줌•쓰레기 수거 처리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조선인 거주지(북촌)였다. 일본인 거주지(남촌)은 하수구 시설이 완벽하게 설비되어 있고, 인천부 소속 인부들이 똥오줌•쓰레기 수거 처리에 우선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역주 인천부사, p. 1337, 역주 인천의 긴요문제, p.33-34)

1932년 3월 28일 인천부 의회에서 인천부의 똥오줌•쓰레기 수거 처리 과정에서 북촌과 남촌간의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인천부는 똥오줌•쓰레기 수거 처리를 졸속 시행했다. 남촌은 부직영으로, 북촌은 청부업자(야쓰코우치)에게 맡겼으나 불성실하게 수거 처리하는 바람에 수많은 민원이 제기 되었다. 그러나 인천부는 이를 수수방관했다. 남촌의 면적은 북촌의 1/2도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똥오줌•쓰레기 수거 처리 인부를 더 많이 배치하는 등 노골적으로 차별하였다.

똥오줌 수거 처리의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인천부는 1933년부터 똥오줌 수거 처리를 청부업자에게 전부 위탁했다. 이어 1934년에는 쓰레기 처리와 청소까지 청부업자에게 완전 위탁 조치했다.(역주 인천부세일반 1933-1934, p.77)

인천부는 이전 직영 운영 시, 수거해 온 똥오줌•쓰레기를 청부업자에게 불하했다. 청부업자는 인천부청에 이에 대한 대금을 지불했다. 전부 위탁한 후에는 청부업자에게 대금을 지불하거나 처리과정에서 나오는 수익 전부를 가져가도록 하는 특혜를 부여했다.(역주 인천항, p.94)

또한 인천부는 남촌에 똥오줌•쓰레기, 청소 예산의 1/2을 집중 투입해 변소와 하수구를 개량해 깨끗한 위생환경을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북촌은 불완전한 똥오줌 수거 처리와 하수배출로 위생환경이 더 악화되었다.

1932년부터 1938년 인천부의회의 청부업자에 대한 사업 평가는 다음과 같다.

1932년 청부 후 분뇨적체, 인부들의 소제 무성의로 더욱 불결해 짐

1933년 청부업체 소속 인부의 파업 발생

1934년 특정 청부업자(야쓰코우치)에게 입찰(청부대금 2만 5천원 제공)

1937년 특정 청부업자(야쓰코우치)에게 입찰(청부대금 4만3천원 제공)

(김상은, 일제하 도시청소행정의 전개와 변화, 서울시립대 석사학위 논문)

1938년 인천부는 똥오줌•쓰레기, 청소 수거 처리를 직영으로 전환했지만 남촌과 북촌의 차별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로 인천부 당국에 오물 소제와 분뇨 수거 처치가 태만하여 북촌일대 주민의 대소변에 대한 부당국에 대한 비난성이 점고되고 있는 상태이다.(조선중앙일보 19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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