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용걸 사단법인 ‘함께걷는길벗회’ 이사장/성공회 신부

"나는 자본과 권력이 한패가 되어 쫓겨나는 철거민의 한 맺힌 부르짖음을 보상금이 적네많네로 매도하는 지식인들의 기회주의를 고발합니다."

"철거민 스스로 제풀에 나가떨어지도록 각종 이름을 붙인 소송으로 괴롭히고 있는 재개발조합 또한 금융과 토건세력에게 기생하고 있는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나는 철거되는 저 폐허의 뒤편에 숨어 팔짱끼고 웃으며 손익계산 주판을 두드리는 세력들을 고발합니다."

한용걸(58) 사단법인 함께걷는길벗회 이사장은 주안1구역재개발 철거현장을 돌아보고 한때는 이웃이었지만 지금은 떠나고 없는 빈 집들 사이를 걸으며 이렇게 성토했다.

재개발로 인해 생이별을 겪고 희망을 잃거나 건강까지 해치면서 불행하게 이곳을 떠나간 이웃 어르신들의 이야기(동영상 참고)를 하며 그는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국가와 사회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의와 연민이 없는 것이다.”라고.

길벗공동체 ‘섬김의 집’을 찾은 26일 오전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주안1구역 재개발 철거현장은 모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로 먼지를 씻어내서인지 마치 시간마저 깨끗하게 씻어버릴 것처럼 거기에 있었다.

누구도 돌보지 않아 버려지거나 방치됐던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삶의 터전이었고 이들을 돌보는 14명의 직원들에게는 소중한 직장이었던 3층짜리 붉은 벽돌건물 ‘섬김의 집’은 주민들 대부분이 빠져나간 빈 골목 사이에서 마치 자신에게 곧 닥쳐올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울적하게 서있었다.

이 집의 주인은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벼랑 끝에선 사람들...어디로 가야 하나.

섬김의 집은 증명서가 필요 없으며 혜택을 받기 위한 기초생활 수급자라는 조건도 따라 붙지 않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복지시설이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용변 해결이 힘들고 신변처리가 어려워 가족과 친척에게서도 버림받은 1·2급 중증장애인들이 태반이다. 때로는 고국을 떠나 불법체류자로 쫓기는 외로운 이방인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아무 곳도 의지할 데가 없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또는 장애가 중증이라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마지막 안식처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주안1구역 재개발수용결정에 따라 섬김의 집 사람들은 마땅한 이주 대책 없이 이곳을 떠날 위기에 처했다. 참혹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더불어 살아왔던 이들이 함께 손잡고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지난 6월 말, 섬김의 집은 조합 측의 건물을 비워달라는 소송에서 ‘8월 31일자로 주안1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측에 인도하라’는 화해권고 결정 판결을 통보받았다.

현재 조합이 제시한 보상가는 5억 3천만 원, 그 중 2억 원은 로또기금이라 공탁 걸리자마자 구청에서 압류를 하기 때문에 남는 돈은 3억 3천만 원이다. 이 돈으로 30여 명이 생활할 수 있는 건물을 매입해 시설을 갖춰야 한다. 현실적으로 당연히 불가능하다.

한 이사장은 “1994년 시작한 섬김의 집이 어느덧 2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며 “아파트를 짓는다는 이유로 스스로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이들에게 아무런 이주대책도 없이 각종 소송을 걸어 막무가내로 집을 내놓으란 요구는 천부당만부당하다”는 말로 그간 쌓였던 속상한 마음을 대신했다.

섬김의 집 이전 걸림돌은 이 뿐만이 아니다. 섬김의 집은 중증장애인들이 살고 있는 복지시설이기 때문에 이전을 위해서는 이주지역 선정과 함께 이주를 위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장애인시설 입주에 대한 거부감 등의 사유로 이주할 지역에서 님비현상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입주할 건물과 시설을 매입한다 해도 해당지역 지역민들과 만나 사전 협의와 조율이 필요하다.

또 해당 지역민들과의 합의가 원활하게 돼 건물을 매입한다고 해도 노유자시설로 허가를 받아야 입주가 가능하다. 즉 시설 매입 후 소방 및 방재시설, 장애인이동 편의시설, 장애인 생활편의 시설 등을 설치하고 구청에서 노유자 시설 허가를 얻어야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시간과 자금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싸우지도 못하는...무력한 나의 기도 함께 해 주길

“우리를 이대로 같은 조건의 건물(지하1층 지상 3층의 노유자 시설)로 이주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미추홀구청과 주안1구역주택재개발조합은 섬김의 집을 지킬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바랍니다.” -한 이사장 페이스북 게시글 중에서-

섬김의 집은 1994년 설립돼 2019년 현재까지 수많은 거리의 천사들과 중증 장애인들의 안식처가 되었던 곳이다. 1997년 발생한 IMF 시절에도 갑작스런 실직으로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을 위해 5년에 걸쳐 하루도 쉬지 않고 무료급식 및 의료진료 활동을 해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 발달장애아동들의 교육과 치료센터를 건립해 장애아동과 그 부모들을 교육했으며 2001년에는 교육부에 장애아통합교육 보조교사원 제도를 제안해 지난 2004년 법제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지난 2003년에는 장애인의 응급구조시설인 단기보호센터를 설립해 2019년 현재 미추홀 단기보호센터로 운영되고 있으며 2005년도에는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사회통합의 제도인 장애인보호작업장을 마련해 장애인고용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이사장은 “섬김의 집은 이러한 시설들을 낳은 산파역할을 한 곳이다”며 “지금도 사단법인 ‘함께걷는 길벗회’의 모태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복지시설이다”는 말로 섬김의 집에 대한 애정을 담뿍 표현했다.

팽배한 행정편의주의 시설운영중심에서 벗어나 이제는 장애인 당사자 중심 매뉴얼 실행해야 할 때.

“인천 똥고개에서 처음 만났던 사람들과 함께 오늘까지 왔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27년 전에 침을 질질 흘리던 아가씨 애자씨도 어느덧 59살이 되었다. 엎드려서 기어 다니며 세상을 보면서도 씩씩했던 소녀 또한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한 이사장은 인천 똥고개에서 처음으로 인연이 되었던 이 사람들과 함께 해왔던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라고도 말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고통의 시간들을 수없이 이겨내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 이사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행정편의주의를 벗어나 장애인 당사자 중심으로 보다 세심한 정책이 현장에서 실행되어야”한다는 바람과 “불안에 떨고 있는 섬김의 집 식구들이 지금처럼 함께 살 수 있는 이주대책” 소망을 전했다.

한 이사장은 춘천 출생으로 1994년 인천에서 ‘섬김의 집’을 설립하고 홀로살 수 없는 중증의 장애를 가진 이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으며 2000년 ‘함께걷는길벗회’ 사단법인을 설립하고 미추홀구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사회통합을 위한 5개소의 생애주기별 장애인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