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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야구의 마중, 신화수리 출신 석연봉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 고려야구단 전인천야구대회 우승

석연봉은 1915년 신화수리에서 태어났다. 1922년 영화심상보통학교를 입학하면서 야구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1927년 제 2회 전인천소년야구대회에 신화수리 소년팀 주전으로 출전해 결승전에서 사정소년군을 11:5로 승리해 우승했다. 석연봉은 서울 배재고보로 진학해 배재 야구팀 주전선수로 활동했다. 배재 야구팀에는 인천에서 같이 활약한 지성룡, 이수봉, 장귀남, 김태봉 등이 있었다. 이들은 인천 한용단 소속 고려야구단에서 주전선수로도 활약했다.

석연봉이 활약한 고려야구단은 청년단체 한용단 소속 야구팀이었다. 원래 한용야구단이었으나 일본인 팀과 경기 중 일본인 심판이 노골적으로 편파 판정을 하다가 이에 항의하는 한용야구단 선수과 싸움을 벌여 결국 한용단은 강제 해체되었다. 1926년 요코다 인천부윤이 야구를 좋아해 웃터골 공설운동장을 확장, 정비하고 이를 기념해 인천체육협회 주관으로 전인천야구대회를 개최했다. 이에 단장 곽상훈은 서병훈의 지원을 받아 한용단을 재건해 대회에 출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용단이란 팀명으로는 출전할 수 없다고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팀명을 고려야구단으로 바꿔 출전했다. 고려야구단은 1927년부터 1931년까지 3번 우승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32년 석연봉은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곧바로 인천부 야구단으로 스카우트되었다. 홈런 타자로 명성을 날렸다. 23세 때 인천 윳터골 운동장에서 열린 전조선선발팀과의 친선경기가 있었다. 석연봉은 전인천선발팀 주전선수로 출전해 투런 홈런을 날려 4:0 완봉승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1936년 경동철도주식회사가 수인선 부설권을 따면서 회사 홍보를 위해 수원 연고 야구팀을 창설하고자 했다. 이때 인천부 야구단 소속 석연봉을 스카우트를 했다. 인천부 야구팀 월급이 35원이었는데, 경동철도 야구팀에서 월급 55원으로 인상하는 조건을 제시해 전격 경동철도 야구팀으로 이적했던 것이다. 그리고 황해도청 야구팀에서 주전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친구 지성룡을 끌여 들여 창단 때부터 최강 전력을 갖추게 했다. 홈런 타자 석연봉과 강속구 투수 지성룡의 활약으로 당시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있던 철도국 야구팀과의 경기에서 연승했다. 수원 야구의 명성을 전국에 알리게 되었다.

석연봉의 활약은 아직도 수원에서는 널리 알려져 전해 내려온다. 수원 화성 운동장에서 경기를 할 때 홈런을 때리면 화홍문 철간수에 떨어져 결국 공을 찾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을 정도로 강타자였다고 한다. 수원야구의 명성을 널리 알리게 한 석연봉은 수원 야구 역사에서 수원야구의 마중물로 인정받고 있다.

편집부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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