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동양방적 인천공장 여성 직공 노동자의 일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장 내 기숙사가 있기 전에는 주간 작업조와 야간 작업조 2교대 출퇴근제였다. 주간 작업조는 새벽 6시까지 도시락을 들고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그리고 12시간 장시간 노동을 해야 했고, 그 대가로 일당 20전을 받았다. 야간 작업조는 오후 6시에 작업에 투입되어 오전 6시까지 밤샘 노동을 했다. 주야간 작업조는 1주일 단위로 교대되어 휴일도 없이 365일 24시간 공장 가동되었다.

여성 직공 노동자의 연령은 16, 17세가 주류를 차지했다. 일부 20세 전후 고참 직공도 있었다. 이들은 계속 돌아가는 기계와 작업 감독의 혹독한 감시 하에 엄청난 열기와 먼지로 뒤섞인 작업장에서 꼼짝 못하고 일만 해야 했다. 이로 인해 땀띠와 습진 그리고 폐병까지 각종 질병으로 시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2교대 12시간 장시간 노동으로 받은 대가는 일당 20전이었다. 당시 일당 20전은 겨우 한 끼 식사만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저임금이었다. 그래서 이직률이 높았다. 공장 가동 초창기에는 통근제를 도입했다. 당시 인천 거주 조선인 여성직공 노동자들이 집을 떠나 공장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으로 꺼려할 뿐만 아니라 공장 설비에 난관이 많이 있어 기숙사 설치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통근제를 도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인 여성 직공 노동자들은 시간 개념이 부족해 출근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정확한 출근시간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조선인 여성 직공 노동자들에게는 시간개념의 부족으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눈비가 오면 결근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또 몸이 불편하다고 공장에 연락도 없이 결근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해 생산 차질을 초래했다. 이로써 통근제 실시는 실패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일본 공장과 동일한 형태의 기숙사제도를 도입했다.

동양방적 인천공장 부지 내에 기숙사를 신축했다. 공장철근 콘크리트로 지었는데 기숙사는 한옥 형태로 지으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줬으며, 외형은 적벽돌로 지어 최신식 기숙사임을 보여 주고자 했다. 기숙사제도를 도입하면서 조선인 여성 직공 노동자들은 대부분 기숙사에서 생활했으며, 쉽게 기숙사생활에 적응했다. 통근제 실시로 인한 잦은 결근이 크게 감소하면서 작업능률이 크게 향상되었다. (일본 동양방적 70년사, 1953. 참조)

기숙사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생산량 증가하면서 통근제 실시의 실패 원인을 조선인 여성 직공 노동자들의 시간 개념 희박, 힘든 노동 기피하는 잘못된 생활습관 등으로 돌리면서 장시간 노동,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엄격한 통제 등 근본 원인을 철저하게 왜곡, 은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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