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야외활동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봄도 좋기는 하지만 황사 때문에 아무래도 가을이 나들이에는 제일 좋은 시기인 듯 하다.

이 나라 백성은 이 좋은 계절을 누릴 복도 없나 보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의 가을은 실종됐다. 개천절도 사라지고, 한글날도 사라졌다. 단군과 세종대왕이 혀를 찰 일이다. 1년 동안 준비한 한글날 행사가 광화문 집회로 인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고 한다. 각 지역의 축제에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고 있다. 주말이면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해 광화문으로 서초역으로 몰려드니 지방 행사가 텅 빌 수밖에 없다.

정치의 실패는 의회 정치를 몰아내고 광장의 정치를 부른다. 백성이 직접 정치에 뛰어든 사회는 이미 민주적 대의정치의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실패한 사회다. 진영이 나뉘어 서로에게 저주를 퍼붓고 주말 마다 대규모 집회를 하는 사회는 이미 공동체이길 포기한 사회다.

정치의 실패는 백성의 눈물을 부른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우리는 실패한 정치가 주는 고통을 수없이 보아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외환위기 시절 우리 국민은 무능한 정치가 주는 해악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수십년 지켜온 일터에서 밀려나고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은 무너졌다. 거리엔 실직자가 넘쳐나고 한강에선 자살이 이어졌다. 그 시절의 비극은 정치가 국민을 배반하고, 고통을 준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정치가 국민을 배반하고 있다. 조국 문제를 제도적 틀 속에서 처리하지 못 한 채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 여야가 의회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국민이 진영대결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정치인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가족끼리 즐거운 나들이를 해야 할 국민을 광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학생도 직장인도 본업을 팽개치고 광장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정치가 국정을 팽개친 사이 경제는 갈수록 나빠지고, 민생법안들은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북미 관계는 위태롭고 한일관계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중관계 역시 늦가을 서리를 맞은 것 처럼 차갑기만 하다.

정치인들은 경제고 안보고 안중에 없는 듯 하다. 국회와 민생을 팽개치고 삭발쇼에 막말쇼까지 낯뜨거운 막장쇼를 연출한다. 오로지 내년 총선 승리만 눈에 보일 뿐 백성의 눈물은 안중에도 없다.

임진왜란도 한일합방도 6.25도 IMF 외환위기도 모두 정치의 실패가 빚은 비극이다. 늘 정치인은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았고, 힘없는 백성이 책임을 져야 했다. 언제나 세도가는 살 궁리를 하며 빠져 나갔고 죄없는 백성만 죽어나갔다. 우리 역사의 마디마디 마다 힘없고 죄없는 백성의 피눈물이 고여 있다.

이제 실패한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 '깨어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던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국민이 심판자가 되어 실패한 정치를 역사의 무대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래야 백성이 산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 등에서 동북아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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