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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길 작가의 '고구마'
▲ 백령도 백색 고구마

 몇 해 전부터 조반은 고구마와 인절미 그리고 된장국으로 해결한다. ‘아침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권장식단과는 거리가 있지만 위장에 부담이 없고 체질에도 맞는 것 같다. 경험론적이지만 소화 잘되고 섬유질이 풍부하여 뒤탈 없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요즘은 고구마를 건강식품으로 취급하지만 예전에는 끼니를 대신하던 구황(救荒)음식으로 먹곤 했었다.

대가족 맏며느리였던 어머니는 항상 언덕밥을 지어 가운데 밥은 어른들께 드리고 가장자리 보리나 잡곡밥은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감사하게 먹기를 이르셨다. 그마저 부족한 날에는 찐 고구마와 된장국을 먹었는데 어린마음에도 목이 멜 때가 있었다.

재수좋은 날은 할아버지 틈에서 겸상을 했는데 맛있는 찬이 있어 좋긴 하나 무릎 꿇고 씹는 소리 내지 않으며 빨리 먹어야 했던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다 먹은 후에는 절에서 공양하듯 밥그릇을 물로 헹구어 마시는 것도 고역이었다.

유추해보면 식량이 절대 부족하던 시절 한 톨의 밥알도 아끼고 혹여 식사 중 딴 짓을 하다가는 밥그릇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 얼른 먹기를 가르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십여 년 전 소천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밥이 되고 싶다”는 말씀처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밥만큼 귀한 것이 있을까 되새겨 볼수록 더욱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

당시에는 대다수 이웃이 하나같이 구차한 형편이라 요즘 소위 말하는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행복지수만큼은 세계 상위권이라는 말이 새삼 이해 가는 대목이다.

그때 아이들은 영양결핍으로 얼굴에 버짐이 끼고 땜통이라 불리는 머리 부스럼과 이발충이나 도장밥 같은 탈모 현상이 흔했고 부황기 짙은 어른들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국민소득이 1인당 70달러 정도였으니 세계최빈국 수준이었고 6․25사변이 끝난 후 미국 구호물품인 밀가루와 고구마나마 먹을 수 있는 것도 다행일 정도였다.

떠올리기조차 괴롭던 가난속의 먹거리가 돌고 돌아 오늘날 웰빙식품으로 버젓이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으니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배고픈 시절에 ‘나물먹고 물 마시며 이빨 쑤신다’는 허세도 있었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말하고 있으니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고구마는 영어로 sweet potato라고 하듯 달콤한 감자로 불리나 실제 감자보다 당질이 적고 칼로리도 낮다. 원산지는 중남미 지역으로 콜럼버스가 유럽에 전파했고 우리나라에는 조선 영조 6년(1736)에 일본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대마도에서 들여왔다.

대마도에서는 고구마의 일본 명칭인 ‘사쯔마이모’보다는 ‘고오꼬오이모’라고 하는데 ‘고오꼬오’는 효행(孝行)의 일본말이다. ‘이모’는 감자 등을 총칭하는데 가난한 자식이 부모를 위해 고구마로 부양했다는 전설에서 생긴 말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고구마란 이름이 붙었다.

고구마는 뿌리에 열매를 맺는 식물로서 ‘고구마줄기 캐듯’이란 말은 덩굴을 당기면 많은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숨겨진 것이 연달아 줄줄이 나올 때 인용되곤 한다.

종류는 밤고구마와 물고구마로 나누지만 요즘은 호박과 교접한 속이노란 호박고구마도 있다. 백령도 특산인 겉이 허연 고구마 찐 것을 쭈쭈바처럼 쭉 빨면 홀쭉해지며 꿀물이 나오는데 시럽음료 마시는 기분이 든다.

고구마는 삶거나 굽는 외에 튀김과 피자, 맛탕 그리고 죽이 있지만 겨울밤 호롱불 아래 독 속에서 구워낸 ‘야끼모’라고 부르던 군고구마가 제일 생각이 난다.

쪄서 말린 ‘진절간’은 간식이 부족하던 때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곤 했는데 딱딱하지만 과자처럼 고소하여 어머니가 챙겨주시던 주전부리 중 하나였다.

특히 고구마는 칼륨이 많아 짠 것을 많이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트륨배출을 도와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전부터 찐 고구마를 김치와 함께 먹어온 것도 궁합이 맞는 음식으로 조상들은 이미 슬기롭게 터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불혹 즈음 한창 왕성하게 일할 때 야근 후에는 으레 삼겹살에 소주로 피곤을 달랬으니 운동부족과 과식으로 건강에 좋을 리가 없었다. 처가 어디서 들었는지 저녁에는 밥 대신 고구마를 권했다 위에 부담이 없고 배변에도 좋다는 말에 그리했더니 사실이었고 지금껏 친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려서 먹던 음식이 입에 맞듯 잊혀진 몸속의 효소가 되살아나 쉽게 먹을 수 있었고 안 먹으면 궁금한 거다.

퇴근 무렵 사무실에서 전화로 고구마 좀 쪄달라고 부탁하면 처는 남부끄럽다고 농담 삼아 암호 쓰기를 일러 주었다. 즉 ‘고’하면 알아듣겠으니 그리하라고 하여 가끔 사무실에서 ‘고’하고 시침을 떼면 동료들은 당시 팔운동으로 널리 보급되었던 고스톱 약속이나 한줄 알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명색이 상급자인 내게 묻기도 뭐하고 음식점에서 막간을 이용한 화투놀음에도 관심 없는 사람이 저들 몰래 판을 벌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으리라.

퇴근 후 나는 찐 고구마와 김치 그리고 된장국을 곁들인 소박한 저녁식사를 자의 반, 타의 반 지속했더니 건강에도 좋았다. 더불어 위장이 깨끗해지고 숙변으로 정상체중을 유지하니 일석이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까지 고구마와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으니 이 못생긴 열매에게 오늘도 감사하여라, 고마워라.

내 어린 시절에는 됫박으로 파는 쌀과 잡곡을 종이봉투에 담아 사오곤 했었다. 여의치 않을 때는 물국수나 고구마로 끼니를 대신했는데 이런 저녁 날은 슬픈 모습으로 모두 말이 없었다. 그런 날 할머니께서는 배가 일찍 꺼진다고 뛰지도 못하게 하시던 생각도 난다.

어느 날인가 TV를 보니 말씀 잘하시는 장 목사님도 교회 개척초기에는 무척 고생하셨고, 고구마와 푸성귀로 연명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곳곳에 초빙 받아 바쁘게 활동하시다 집에 들어오시는 저녁에는 사모께서 고구마 몇 덩이를 쪄 놓는 것을 보았다. 아마 전국을 거침없이 다니시는 체력이 고구마에서 나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목사님의 저녁식사는 아직도 고구마였다.

이제는 세월이 좋아 먹거리만큼은 걱정 없는 세상이 되었다. 최소한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굶주림 걱정은 덜게 되었고 좋아하는 음식도 골라 먹을 수가 있다.

그러나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다 보니 순수한 인정은 각박해져 아쉬움이 남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잊은 채 끝없는 욕망,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세상은 역시 공평하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고구마를 들고 목메던 때를 생각하면 분명 그래야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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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도거주 한국인 2019-10-22 22:32:11

    옛날에 대마도는 일본 땅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문에 일본 본토에 있는 고구마를 용감한 대마도 주민이 목숨을 걸고 훔쳐왔고, 본토와는 다른 식물임을 표시하기 위해 효도를 행한다는 뜻에서 '효행 감자(고우고우 이모)"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고우고우 이모"는 히타카츠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평야지대 주민들의 사투리 발음입니다. 이것이 부산 영도로 들어와 재배되며 고구마로 알려졌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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