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부러진 화살'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정지영 감독 안성기 주연의 이 영화는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에게 석궁을 쏜 명문대 교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2012년 1월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이 나라의 사법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이슈화했다.

2020년 6월 이 나라 청년들은 '부러진 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요원 1900여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한 이른바 '인국공 사태'에 대한 2030 청년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들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부러진 펜 사진을 올려 항의하는 이른바 '부러진 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청년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분노를 SNS 세대 다운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의 분노는 정부와 정치권, 기성세대를 향하고 있다. 청년에게 미래를 빼앗은 정부의 정책에 분노하고, 공정과 정의, 평등을 내세우는 정치판의 레토릭에 등을 돌리고 있다.

사안이 심각하게 흘러가는 데도 청와대와 정치권은 본질을 벗어난 언동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생산적 토론은 없고 정쟁만 난무한다.

'부러진 펜 운동'은 '인국공 사태'로 촉발되었을 뿐 본질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컵 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공부를 해도 갈 길이 없다는 절망이 청년들을 좌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일부 정치권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대응해 청년들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동문서답이 아닐 수 없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먼저 청년 일자리를 1902개 만든 다음 비정규직 19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면 과연 청년들이 반발했을까? 청년들은 자신들을 위한 일자리는 만들지 않은 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만 골몰하는 인천공항공사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이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청맹과니 같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인천공항공사가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에만 집착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전격 추진하는 것은 뻔뻔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는 여론이다. 적자가 아무리 늘어나도 국민 세금으로 메꿔줄 테니 걱정이 없다는 심보인가?

정치권의 대응도 한심하다. 여당은 인천공항공사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데만 급급하고, 야당은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떤 정책이든 완벽한 것은 없다. 따라서 정책은 상황과 여론을 보며 추진하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정책에 성공해도 홍보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실패한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정책의 성과가 국민의 피부에 와 닿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코로나19 경제위기' 와중에 청년들의 분노를 사면서 추진하는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정책이 무슨 성공을 거둘 수 있겠는가?

청년들은 미래를 빼앗긴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는 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힘들고, 부동산 폭등에 내집 마련을 꿈꾸기도 어려워 결혼과 연애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청년정책수석'이라도 신설해 청년 정책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국회도 밥그릇 싸움을 당장 중단하고 빨리 원구성을 해서 청년 정책에 대한 심의와 예산 증액 등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만이 청년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희망을 주는 길이다. 또한 청년의 미래를 빼앗은 기성세대가 속죄할 수 있는 길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에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강의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남양주시 국제협력 특별고문, 금천 G밸리 한중기업교류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