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진 노래로, 나폴레옹 제정(帝政)과 부르봉 왕정복고(王政復古) 시기 동안 금지되었다가 1875년 제3공화정이 회복되면서 지금까지 프랑스 국가(國歌)로 사용되고 있다. 노래의 기본 골격은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띄고 있지만,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을 거치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와 평등적 민주주의의 상징성을 내포하는 곡으로 인식되어 왔다. 19세기 유럽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던 ‘혁명의 노래’였던 만큼, 당시 적당한 민중가요가 없었던 독일이나 러시아 등 주변국가에서도 대규모 집회나 시위에서는 이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인터내셔널(L'Internationale)’. 1871년 파리꼬뮨 당시 노동계급에 의해 만들어져 불린 노래로,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돼 불리고 있는 노래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일어나라 이 땅의 비참한 자들이여(Debout, les damnés de la terre)“로 시작하는 프랑스어 원곡은 우리나라에서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로 번역되어 불리고 있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애국가’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 노래의 러시아어판은 1943년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을 해체한 스탈린이 이듬해 ‘소비에트 연방 찬가(Gimn Sovetskogo Soyuza)’를 국가(國歌)로 지정하기까지 20여년간 소비에트 연방 국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로, 이후 집회 등 현장에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민중의례’의 지정곡으로 이 노래를 사용하고 있다. 이 곡은 특히 ‘80년 5월 민중항쟁’을 대표하는 노래로 그 상징성이 인정되어 1997년 5·18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래 2008년까지 정부 주관 행사에서 기념곡으로 제창돼 왔다. 곡이 처음 불려진 1982년 이래 ‘민중의 애국가’로 지칭되고 있는 이 노래는 ‘87년 6월 항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했다.

2차 대전 당시 파시즘에 저항하는 파르티잔(partisan)의 노래 ‘벨라 차오(bella ciao)’나,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마저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추모했던 ‘남미의 예수’ 체 게바라(Che Guevara)에 헌정된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 같은 노래들은 대중들의 가슴 속에 이미 그 역사적 상징성이 각인된 노래들로 꼽힌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탄압, 억압된 사회현실에 대항하는 저항운동의 한 복판에서 대중들의 비판의식을 고양하고 저항의지를 고취하면서 강한 소속감과 대중적 연대의식을 확산하는 데 기여해 온 이같은 노래들은 그 사회적 영향력을 넘어 역사적으로 충분히 기념되어야 할 중요성을 갖는다. 단지 그 노래들이 가져왔던 사회적이거나 역사적인 힘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상업성에 오염된 대중(mass)음악이나 순수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순수(fine)음악이 담아내 못하는, 왜곡되지 않은 대중(popular)의 본원적 정서를 담아내 온 노래라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지난 2008년까지 5·18 공식행사에서 제창돼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2009년부터 공식 식순에서 제외되고, 급기야 2011년부터는 제창마저 폐지됐는가 하면, 지난 2013년 국가보훈처는 굳이 이 곡을 대체할 별도의 기념곡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그리고 뼈아픈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이 노래에 대해서조차 틀에 박힌 ‘종북 프레임’을 들이대는 황당한 상황마저 연출되고 있으니, 역사마저 부정하려는 그 태도를 비판하기 이전에 그저 그 무지몽매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80년 5월 민중항쟁은, 강압과 무력에 기초한 ‘다단계 쿠데타’를 통해 민주적인 절차와 형식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등장한 반동적 군부파시즘체제에 맞서, 분노한 민중들이 온 몸을 바쳐 저항했던 역사적 항쟁이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87년 6월 항쟁을 거쳐 오늘날 우리 헌법의 정신으로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거부하는 것은 민주화 과정의 지난했던 그 역사적 사실과 민주주의 정신, 그리고 그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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