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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화해와 용서, 역사의 아픔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화해와 용서, 역사의 아픔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1993년, 취임 첫해를 맞은 김영삼 대통령은 그해 5월 ‘5.18 특별담화’를 통해 “5.18이 결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거나,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다같이 잊지는 말되, 과감하게 용서함으로써 새롭게 화해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단죄가 “보복적 한풀이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용서하는 것만큼 큰 용기는 없다”고도 했다.

담화를 통해 그는 “미움과 갈등의 고리를 끊고 악몽과 멍에로부터 자유로워지자”며 희생자 명예회복과 기념일 제정, 관련 보상법 제정 등 후속조치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냉랭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반발했고, 국민여론은 비판적이었다. 5.18 희생자들에 대한 정부의 조치가 배상(賠償)이 아니라 보상(報償)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대해서도 시민들은 비판적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를 자처하는 문민정부의 초대 대통령 YS의 담화 이후 이듬해 10월 검찰은 이른바 ‘12.12 군사반란’ 관련자 34명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시민들은 이에 반발해 그해 12월 서울역 광장에 수만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국민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진상규명과 관련하여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되리라고 믿는다”며 “진실은 역사 속에서 반드시 밝혀지고 만다는 것이 저의 확신”이라고 YS는 강변했지만, 1995년 7월 검찰이 5.18과 관련해 결국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면서 이 사건은 끝내 화해도 용서도 없이 역사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한때 ‘폭동’이라고까지 불리기도 했던 ‘광주민중항쟁’에서 가해자 측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았고, 사건의 명확한 진상(眞相)도 여전히 완전하게 규명되지는 않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조차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있는 현상태에서 피해자들의 응어리진 한(恨)을 풀고 역사가 이를 단죄해서 평가하리라는 기대는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광복 70주년·한일협정 50주년을 맞았던 한해가 저물어가던 지난 연말, 한일 양국정부는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격 합의문을 내놨다. 양국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는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핵심쟁점이었던 ‘책임통감’ 문제와 관련해서 그것이 법적 책임인지 도의적 책임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며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했지만, 가해자로서 ‘배상(賠償)’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진상’이 규명되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로부터 화해와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지만,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finally) 및 불가역적(irreversibly) 해결’은 일방적으로 선언되고 말았다. 이 선언으로 인해 피해자 할머니들의 응어리진 한(恨)이 더해졌을지 덜해졌을지는 더 말할 바 되지 못한다.

똘레랑스(tolerance)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관용(寬容)의 조건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나치(Nazis) 독일에 점령당했던 프랑스가 전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 관용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죄, 그리고 책임자 처벌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똘레랑스는 무조건적인 화해와 용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YS의 ‘5.18 담화’가 그랬던 것처럼 “시대가 남겨준 앙금과 한을 훌훌 털고”, “과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열어나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이번 ‘위안부 협상’이 그런 것을 의도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그렇게 서둘러 ‘최종적(最終的) 및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음으로써 피해자들에 대해 또 다시 2차 가해를 가하는 폭력적인 상황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의 불행, 역사의 아픔이기 이전에 반인륜적인 전쟁범죄이며, 국제사회의 정의(justice)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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