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눈가에 무더기로 쌓인 눈곱을 치운다. 생각이 자꾸 생각을 낳느라 시달렸다. 일어나니 속눈썹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물 묻혀 말라붙은 눈곱을 떼어낸다.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앙탈이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눈두덩이, 눈꼬리에 레몬을 매단 낯선 여자의 풍경이 거울 속에 있다. 

코가 맹맹하다. 화장지를 한지삼아 콧물을 탁본한다. 주름 잡힌 성대가 비명을 지르며 가래를 뱉는다. 잔털 사이로 오슬오슬 소름이 돋는다.

얼굴이 벌게지며 식은땀이 난다. 모든 구멍에게 계엄령을 내린다. 몸에 불이 붙는다. 기꺼이 백기 들고 마루타가 된다.

-이외현 시집 <안심하고 절망하기> 중에서-

 

 

 

딱 요맘때인 것 같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노란 금계국 길 어귀, 솔바람 꽃가루에도 콧물을 흘리고 지천으로 하얗게 흩날리던 아카시아 향기에 취했다가 온도차가 심한 저녁에 재채기로 화장지를 훔치던 꼭 한 번씩은 치르는 감기라는 미운 녀석. 이제는 나이를 불사하고 열감기로 눕게 만들기까지 하니 힘들긴 매 한가지다.

목도 잠기고 열도 나고 콧물에 재채기까지 나면 앓아누울 수밖에 없는 연약한 여자, 이제는 감기라는 미운 녀석쯤이야 떠나 보낼만도 한데 꽃도 피고 장미꽃 넝쿨 싱그럽게 올라오는 걸 보니 콧물 재채기쯤이야 밉지가 않다. 얼른 툭툭 털고 일어나 초록들판에 알록달록 예쁜 꽃구경이나 가볼 일이다./정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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