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이 기다리다

새벽에 눈 뜨면 머리맡에

그가 있다

앓고 나서부터는 하룻밤에 몇 번이고

자다 깨어 그를 만난다

밤마다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내 몸뚱이를 샅샅이 쏘아 보고 있다

숨소리가 벽시계 초침에 옮겨 앉는다

고요는 이불귀를 붙들고 팽팽하다

새벽빛이 창호지에 스밀 때까지

어둠이 자동차에 밟혀

헐어질 때까지

-권순 시집 <사과밭에서 그가 온다> 중에서

▲ 권순 시인
권순 시인의 첫 시집 <사과밭에서 그가 온다>가 나왔다. 무서우리만치 가라앉은 시인의 내면에서 인생에 대한 관조와 삶의 따듯함이 배어나온다. 유행이란 아예 집어치우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가슴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 무어래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고집스러운 그의 눈이 읽어들이는 세상사를 만나보는 일도 이 더운 여름을 식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는 2014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하기 때문에 이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사랑도 한다. 그런데 끝내 만나는 것은 결국 고독이다. 평생 벗어나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나 고독은 항상 뒷통수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공포스러운 그림자이다.

고독을 더 고독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적막이다. 만약 우리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절망에 가까운 상태일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도 어머니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니까 아무튼 무슨 소리라도 들려야 사는 것이다. 시끄럽다고 귀를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 것이라도 보여야 사는 것이다. 눈 감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곁에 있어야 행복한 것이다. 누구든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내게 살아야 하는 의미를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혼자로부터 탈출하는 일, 적막을 결코 끌어들이지 않는 일, 이런 시도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더불어 사는 생명체로서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가슴과 만나고 너그럽게 열려 있는 정신과 만나게 된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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