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도
  -소치 허련의 8곡 병풍

거북이의 등에서 피가 난다
구부정한 몸통에
당당하게 뒤틀린 가지

부드러운 곡선이 용솟음치며
다시 살아서 내달리는 쥐라기
육식공룡 한 마리가
이끼 낀 먹물을 턴다

일필휘지, 내달리는 원경의 끝

비늘마다 꽃가루 공기주머니가 눈 부릅뜨고
여의주로 번지는
붉은 낙관

노송도 8곡병풍속에 거북과 공룡이 살고있다.
 

- 「노송도- 소치 허련의 8곡 병풍」전문

 

정미소
2011년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으로 '구상나무광배'가 있으며, 안양문협 회원, 막비시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는 구체적 세상을 묘사한다. 그리고 문학은 정신사의 기록이다. 그렇게 정미소가 바라보는 세상은 대쪽 같아서 우국충정이 넘실대는 바른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시의 소제목에서 거론한 ‘소치 허련’은 벼슬이 지중추까지 오른 우리나라 전통 남화의 대가이다.

그는 추사의 제자로 소치란, 중국 4대화가인 황공만과 겨룰만하다 하여 추사가 직접 내린 허련의 아호다. 시인의 시선 속에 포착된 ‘산수화 8곡 병풍’은 소치 허련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시인은 모든 것을 각설하고 허련의 그림을 문자로 묘사하는 것으로 화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그녀는 허련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노송도’를 문자로 재현한다. 그녀가 언어로 다시 보여주는 허련의 ‘노송도’는 세월을 뛰어넘어 억겁의 세월을 살아남아 마땅한 것일 텐데. 화자는 그렇게 시간을 거스르는 그 우아함과 장대함을 “노송도 8곡병풍 속에 거북과 공룡이 살고 있다”는 발화로 시의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처음 화자의 시선을 잡아 챈 소치의 그림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의 첫 연은 노송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소나무의 정신을 기록한다. “당당하게 뒤틀린 가지”는 곧 노송의 모습으로 “거북이의 등에서 피가 난다”로 보아 오래고 오래된 시간의 기록을 “구부정한 몸통”과 “뒤틀린 가지”로 모습을 재현한다.

그 당당함에 매료된 화자의 시선은 “일필휘지, 내달리는 원경의 끝”이라는 언술행위로 ‘노송도’의 위상을 문자로 다시 그린다. 그림 한 장으로 시공을 충분히 초월할 수 있음을 시인은 “여의주로 번지는/ 붉은 낙관”으로 노송도 8곡 병풍 속에서 “눈 부릅뜨고” 거뜬하게 다시 일으켜 세운다.-손현숙 시인(리토피아 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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