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아 시인

이상아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거룩한 밥상'(리토피아, 10,000원)을 펴냈다.

74편의 작품이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건강하고 아름다운 시를 피워 올리는 시인의 의식이 세상의 공기 속에 퍼져 신비로운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 독자들의 평가이다.

이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 너머, 세상은 항상 연무. 반짇고리 열고, 바늘 하나 꺼내 손가락을 따면, 이내 피, 검다.’ 하여 삶 중의 숱한 아픔들을 몸으로 느껴가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박서영 시인은 해설을 통해 그의 시를 평가했다.

 ‘이상아 시인에게 있어 존재는 어떤 반응을 통해 일어난 내적 불안이거나 상처다. 이상아 시인에게 특이한 점은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시적 태도이다. 그래서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글자, 어휘라는 단어들은 은하계의 고리처럼 순환적이며 빛난다. 감정의 소모에 열중하는 대신 시를 쓰는 자신을 응시함으로써 반성하고 성찰하는 태도는 존재의 항성恒性, 즉 언제나 변하지 않는 성질이나 성품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상아 시인이 시적 소재나 사건으로 가져온 것들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방대하다. 나무로 대변되는 자연현상에서 혈연적인 관계인 아버지와 어머니, 구로동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와 세월호 문제 등은 시인에 의해 재탄생된다.’

이상아 시인은 196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90년 계간 '우리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나무로 된 집󰡕과 그늘에 대하여󰡕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조용히 사랑하고 싶다, 󰡔내가 밤보다 새벽을 더 사랑함은󰡕 등이 있다. 

중편소설로는 󰡔고백󰡕, 단편소설에 「흔들리는 꽃」, 「이영차」 등이 있다. 문학박사이다. 현재 인하대학교 및 서울성경신학대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작품 소개>

견甄-풀무 속에서

엄마는 화장을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수의를 말씀하시는 윤달이 들었다. 꽃 피는 3월. 나는 커다란 맷돌에 몸을 묶고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아주 깊은 물속인데 눈이 따갑다. 황사가 지나간 사막은 언제나 따가운 모래들의 함성, 들고나는 사람들의 신음이 철썩, 철썩, 어디선가 튀어와 벽에 붙는 살점 같다.

나는 나를 묶은 맷돌을 풀어 아귀를 맞추고 천천히 돌린다. 얼마나 되었을까. 내 몸으로 내리꽂히는 수직의 불길에 또각, 또각, 내 껍데기 떨어지는 소리.

박씨 부인이 되었을까. 듣기 싫은 소리 피해 귀를 막고 감은 눈 속의 어둠을 살핀다. 뭔가 꼬무락꼬무락 움직이는 것만 남고 나는 온데간데없는 천지간.

아는 얼굴들이 울고 있다.

 

보步-나무가 걸어간다

 

나무가 걸어간다.

한세상 살았던 몸을 나와 울을 지나쳐

자주 싸우면서도 가까이 사는 나무에게로

조금 떨어져 사는 덕에 싸울 필요 없는 나무에게로

멀리 살아 늘 그리운 나무에게로

빈손으로 자신을 갈아엎는 힘.

생색내거나 거드름 피우지 않고 조용히 행하여지는

저 고요,의 내밀한 소용돌이.

삶의 내력 고스란히 거름 뿌리는 걸음

운무나 바람의 힘을 빌릴 때도 있다.

저기,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끊긴 나무를 향해

땅 밑으로 깊이 바다 속으로 깊이 하늘 향해 더 깊이

걸음 내딛는 거름 되어야 할 즈음,

나무는 차라리 깊은 울림이 되어

천 천 히

스-미-어-들-듯-이

자신이 사는, 살게 될, 살아갈,

이 나무 저 나무를 애틋하게 바라보기도 하면서

시침 뚝 떼고 있다가

나무의 눈에 비치거나 나무를 비추고 있는 나무의

중심을 읽으며 파고든다.

그, 나무에게로 들어간다.

또, 나무가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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