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내달 11일 오후 5시 부평문화사랑방

▲ 안명옥 시인

안명옥 시인(시집 뜨거운 자작나무숲, 리토피아 발행)이 제7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계간 리토피아(주간 장종권)가 주관하는 김구용시문학상은 최근 실시한 심사(본심-강우식, 허형만, 장종권)에서 안명옥 시인을 제7회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김구용시문학상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등단 15년 이내의 시인이 발간한 시집 중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하고 있다.

시인 개인의 잠재적인 미래성 평가와 차세대 한국시단의 주역으로서의 가능성이 심사의 주요 기준이다. 상금은 300만원이다.

안명옥 시인은 성균관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했으며, 2002년 시와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칼>이 있으며, 서사시집으로 <소서노>,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가 있다. 주니어 김영사에서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금방울전, 파한집과 보한집, 고려사 등의 동화들을 펴냈다. 성균문학상 우수상, 바움문학상 작품상, 만해 님 시인상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안명옥 시인의 시집 '뜨거운 자작나무 숲'은 개인적 서사라는 점을 제외하면 현실의 부조리와 무의미, 그리고 불협화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는 데에서 김구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안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진부해졌거나 느슨해져 버린 관계로 인해 고통 받게 되는 존재의 역설을 날카롭게 잡아내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3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는 김구용시문학상의 제1회 수상자는 권정일 시인, 제2회  장이지 시인, 제3회  김중일 시인, 제4회  김성규 시인, 제5회 김언 시인, 제6회  남태식 시인이 각각 상을 받았다.

인천뉴스, 독서신문사, 솔출판사가 후원하는 김구용 시문학상 시상식은 3월 11일 오후 5시 인천 부평문화사랑방에서 진행하는 제7회 김구용문학제 중 갖게 된다.

이 자리에서는 제7회 리토피아문학상(수상자 정미소 시인)도 함께 시상하게 되며 시노래 등의 축하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김구용시문학상운영위원은 김동호(시인), 장종권(시인), 임우기(평론가), 구경옥(유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심 심사위원은 강우식(시인), 허형만(시인), 장종권(시인)이다.

안명옥 시은 "김구용시문학상의 이름에 걸맞은 시작업으로 큰 인연에 보답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수상소감

이름에 걸맞은 시작업으로 큰 인연에 보답

수상 소식이 먼 이명 같았습니다. 실내온도 16도. 냉기 가득한 집안에 온기가 도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이 우우,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깐 멍해져 있었습니다. 찬물로 세수를 했습니다. 얼굴이 얼얼했고 다시 얼이 통로를 통해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차가웠던 피는 데워졌지만, 어떤 생각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시에 빠져 보낸 시간들이 언뜻 부옇게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부터 김구용 선생님 참배하는 데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조금은 어여쁘셨던 걸까요. 선생님께서 분에 넘치는 영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을 알아갈수록 시정신과 인품에 숙연해집니다. 선생님께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성균관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머물렀다는 것만으로도 새삼 뜨겁습니다. 김구용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 이름에 걸맞은 시작업으로 큰 인연에 보답하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힘을 실어주신 심사위원님들, 이 상을 마련해주신 김구용시문학상 운영위원님들과 심사위원님들들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빛나는 글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게 기적 같은 민규와 지영이에게도 모자란 엄마 늘 응원해줘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언제나 제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든든한 마음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남깁니다. 제가 받는 수상의 기쁨은 다 이런 인연들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이 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치열하게 살겠습니다.

2017년 2월

수상자 안명옥

 

수상 시집 '뜨거운 자작나무숲' 중에서 3편을 소개한다.

 

자작나무 숲

 

어둠은 포근해서 좋다

먼 길을 걸어왔지만

뜨거운 짐승처럼 웅크린

자작나무 숲이어서 오래 걷는다

 

추운 곳에서 자라는 습성을 가진 자작나무

젖어서 더 활활 타 오른다지

축축해진 길바닥에 눕는 달

 

어둠의 자식들일수록 눈빛이 살아 있다

 

아침입니다

 

눈이 오려는지 흐린 날의 아침

몇 년째 월급이 없는 밤을 자고 나간 남편의

구겨진 이불 같은 아침

밤새도록 공부하다가 비몽사몽간에

알바 하러 간 딸의 잠옷 같은 아침

가족이 잠든 밤에도

홀로 깨어 컴퓨터 앞에서 웅크리다가

아침에 노랗게 잠든 아들의 양말 같은 아침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아침입니다

나는 지난 일 년 간 강사로 쌀값이나 벌었을까

긴 겨울방학 강사료 끊기고

피부양자인정요건 상실에 따른 의료보험료 부과통지서를 보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울화병을 선사하는 아침

아들의 입영통지서를 받아든 아침

배워야 잘 살 수 있다는 말

더는 할 수도 없는 검은 아침입니다

생략된 아침을 사는 아들의 아침

시래기 주워 팔던 할머니가 대통령 팔 붙잡고 우는 아침

나도 누군가의 팔 잡고 싶은 절름발이의 아침

6개월 이상 근무해야 받는 실업급여수당

영세 노동자들이나 일용근로자들에겐 꿈에 불과한 아침

시집을 내어도 살림이 펴지지 않는 아침

미친 세상이 미친바람으로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아침

나의 기도가 늘 턱없이 부족한 아침

하느님은 아직도 아침을 사랑하시는지

환한 햇살을 쏟아 붓는 이 찬란한 아침

 

발칸산맥의 장미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 산맥의 장미에서 나온다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딴

장미로부터

 

장미가 최고 향을 뿜어내는 시간은

가장 춥고 어두운 시간

 

내가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스스로 위대해졌다

 

심사평

역설을 원융(圓融)으로 육화(肉化)한 감각적 성취

 

문학의 시대에서 위기 아닌 시대가 없었지만, 지난 2016년은 한국문학 전반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한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중 몇 가지만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의 섣부른 기대와는 달리 노벨문학상은 가수 밥 딜런에게 돌아갔다. 그의 수상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국 한국 문학은 소수 언어라는 한계성과 인류적 시각의 부재라는 문제를 극복하기도 전에 더 이상 문학이 활자에 의지하거나 그 후광에 기대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점까지 염두에 둬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물론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의 권위 있는 맨부커 상을 수상하면서 일말의 위로가 되었지만, 이는 또한 하반기 문학 단행본, 특히 소설이 괄목할만한 성장률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롯이 한강의 작품에 국한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허약한 저변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을 뿐이다.

정치 상황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 시위와 대통령 탄핵안 국회가결이라는 격랑에 휩쓸렸지만 문단은 최순실이 살렸다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위태로웠다. 이름을 알 만한 소설가, 시인들의 온갖 종류의 성추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기 때문이다. 문단의 고질적 폐습이란 자탄에서 멈추지 않고 문인 전부가 의심의 눈초리를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연말에 터져 나온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은 작성 의도나 해당자들의 불이익라는 문제 이전에 가뜩이나 취약한 문학 기반이 정치적 상황에 더 종속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이런 혼란상은 시인 김구용이 한국전쟁 이후 직접 목도(目睹)했던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불협화음에 다름 아니다. 한국시의 선각자로서 김구용을 다시 생각하며 이 위기 속에서 제7회 김구용문학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또한 거기에 있다.

이번에 수상자로 선정된 안명옥 시인의 시집 『뜨거운 자작나무 숲』은 개인적 서사라는 점을 제외하면 현실의 부조리와 무의미, 그리고 불협화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는 데에서 김구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진부해졌거나 느슨해져 버린 관계로 인해 고통 받게 되는 존재의 역설을 날카롭게 잡아내고 있다. 특히, ‘맨홀’이나 ‘못’, ‘창문’, ‘의자’, ‘방’과 같은 낯익은 사물들을 통해 친숙함의 이면에 감춰진 날카로운 각(角)을 섬세한 감각으로 그리고 있다. 마치 감정의 흐릿한 윤곽을 거둬낼수록 사물 자체만 남는다는 릴케를 시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인은 부조리와 무의미를 걷어내고 어떻게든 관계의 맥을 다시 뚫으려고 하지만, 종국에는 “내가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나는 스스로 위대해졌다”(「발칸산맥의 장미」)고 선언해버린다. 이는 최소한 “시란 삶을 육성시키고, 그러고 나서 매장하는 지상의 역설이다”라고 말한 칼 샌드버그의 명제를 뛰어넘는 시적 인식의 지평을 보여준다. 김구용은 후기에 당대의 혼란을 넘어서는 ‘원융’의 경지를 개척하고자 분투했다. 이에 견주어 수상자 안명옥 시인은 이후 어떤 경지를 향해 그의 시를 갈아갈지 지켜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2017년 2월

본심위원 강우식, 허형만, 장종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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