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심심풀이

 

빈 하늘 바라보다 한 잔 하고

꽃이 피고 지는 사이사이 한 잔 하고

시 한 편 낭송하다 솔깃한 그리움에 한 잔 하고

산길에서 주운 바알간 낙엽 두어 장 마주보며 한 잔 하고

굳은 혀를 풀려고 이따금 한 잔 하고

상강 지나 마음 바빠진 겨울 어깨가 움츠려들어 한 잔 하고

스러지고 차오름이 내 마음 같은 달 보며 한 잔 하고

창문에 하나 둘 불 켜지면 한 잔 하고

밤을 밝히는 빗소리도 불러서 한 잔 기울고

우리 언제 한 잔 하자는 얘기에 마음으로 미리 한 잔 나누고

이 남아도는 나를 어찌해야 할까,

탁자에 앉아 한 잔 홀짝이며 적막해지다가

문득, 꽃들을 바라보며

안녕? 얘들아, 한 잔 할래?

-<아라문학> 봄호에서

 

 

박효숙 시인

2016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은유의 콩깍지>. 여수문협 회원. 여수물꽃시낭송회원.

 

 

 

 

술은 흥을 돋우기 위해 필요하다. 마시면 흥겨워진다는 것이 술의 본래적인 특성이 아닐까 한다. 술이 술을 불러들여 폭음으로 가면 물론 술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의 심경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흥겨워지고 싶다는 것일 테고, 하나는 마음의 상처를 잊고 싶어서일 터이다.

시인은 흥겨워지고 싶다. 왜냐하면 봄이기 때문이다. 봄이 와서 심심하다는 말은 제대로 된 말이다. 봄이 오면 무얼 하나, 세월만 잔뜩 흘렀는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봄이 오면 늘 심심해지는 것이 세월 보낸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이다. 봄은 역시 젊은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꽃은 문득 본 것이 아니다. 봄 내내 시인의 눈 끝에 매달려 있었다. 한 잔 하고 싶다. 봄이니까.

세상만사에 감동하고 세상 모든 존재와 화해하고 대화하는 가슴을 갖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이 나만을 사랑하고 내 세계만을 고집하는 풍조로 바뀐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아무리 바빠도 남는 시간을 만들어 한 잔을 기울이는 소통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 오는 봄마다 스스로 꽃이 될 수 있는 소중한 마음일 것이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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