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출

 

어젯밤 꿈속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간도 쓸개도 없는 한 사람을 만났는데

초승달처럼 웃고 있었다

 

탁주 한 사발에 호탕하고 선량했던 그였는데

허허허 웃음 속엔 평화가 깃들었던 그였는데

우울을 못내 사랑하여 우울 씨가 된 그였는데

 

정신병동에서 설핏 스치고 지나갔던 것 같았는데

이제, 우울을 잊고 치매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앳된 웃음 머금고 꽃 진 청년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멀쩡한 간과 쓸개를 가진 자들만

타오르는 불빛 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간도 쓸개도 활활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박철웅 시집 <거울은 굴비를 비굴이라 읽는다>에서

 

 

박철웅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여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막비시 동인. 강남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기신용보증재단 지점장, 협동조합 유앤아이 이사장을 역임했다. 경영지도사이며 플러스 경영연구원 대표이다.

이  땅에는 간 빼주고 쓸개도 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간 안 내주고 지키려다가 하늘에 죄 짓는가 싶어 얼른 빼주고 만다. 쓸개는 아예 빼내버리고 살아야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내 것인 양 욕심 부리다가 애꿎은 사람들이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할까 두려워서이다. 어디에서 이런 부처님 같은 성품을 내려 받았을까.

세상은 멀쩡한 간과 쓸개를 가진 사람들이 질주하며 산다. 그들은 자신의 젊음과 강력한 힘으로 세상에 군림하며 산다. 간과 쓸개를 내버린 사람들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 그것은 적응이 아니라 횡포이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자신의 욕심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들의 배려와 양보를 자신의 유리한 활로로 삼아 무조건 질주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간도 쓸개도 내버린 사람이 초승달처럼 웃고 있다. 어젯밤 꿈속에서의 일이라는데 아무래도 잠 못 이루며 인생을 돌아보는 시인 자신으로 파악되어진다. 치매에 이르러야 오히려 꽃 진 청년이라는 역설이 착하게 사는 인생에 얼마나 의미를 두고 있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누군들 강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나보다 더 나약한 사람들은 누가 배려할 것인가. 풀릴 수 없는 숙제이다./장종권(시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