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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한국 문단에 처절한 시 쓴 한하운 학교 필요하다한하운, 그의 삶과 문학 국제학술 심포지엄
고은 시인 ⓒ부평구청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평가받고 있는 고은(高銀) 시인이 “우리 문단에 (인천시 부평구에서 삶을 마감한)한센병 시인 한하운(1920~1975) 학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고은 시인은 23일 오후 부평구(구청장 홍미영)와 부평역사박물관이 인천여성가족재단 대강당에서 개최한 ‘한하운, 그의 삶과 문학’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석, ‘축사’를 통해 “중학생 시절 해 저문 하교 하면서 우연히 주은 ‘한하운 시초’를 읽고 그처럼 처절한 시 몇 편을 쓰고 죽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우리 시단은 자기 재능에 도취돼 위기를 맞고 있다. 한하운의 삶의 시, 서툴지만 살아 있는 생활의 시,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처절히 노래하는 시를 배우는 한하운 학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비평사에서 한하운에 대한 최초의 평론인 ‘한하운과 한하운 시초’를 쓴 최원식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전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은 ‘기조강연’을 통해 “한국의 문단이 한하운의 시민권을 유보해왔기 때문에 한하운이 우리 문단의 유령이 돼 왔다”고 지적했다.

최 이사장은 그 이유로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주류가 갑자기 문단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점 ▲월북시인 이병철에 의해 시인이 된 점 ▲시적 능력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함 점 등을 꼽았다.

최 이사장은 “한하운이 쓴 시가 기본이기 때문에 한하운이 없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 문단이 한하운 학교에 다시 입학해야한다는 고은 선생의 지적은 정확하다”고 결론 내렸다.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개회사에서 “뒤늦게나마 부평에서 시를 쓰다 삶을 마감한 ‘보리피리’의 한하운 시인을 재조명하고, 그의 삶과 문학을 확인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게 된 것이 자랑스럽다. 부평구는 올 가을에 한하운 시인을 기리는 시비를 세워 부평은 물론, 인천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한하운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그동안 장막에 가려져 있던 한하운 시인의 전반기 약력이 상당 부분 과장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성과는 기초자치단체인 부평구(구청장 홍미영)와 부평역사박물관이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한하운 재조명 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밝혀낸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일본의 요시카와 나기 릿쿄대 강사는 ‘한하운과 일본’이란 연구발표에서 “‘한하운 전집’(2010)의 ‘시인연보’는 한하운이 1937년에 이리농림학교를 졸업, 동경에 건너가 성혜(成蹊, 세이케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939년에 같은 학교 2년을 수료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이리농림학교 학적부에 의하면 농림학교 입학은 1935년 4월, 졸업은 1940년 3월이다. 그렇다면 농림하교 졸업 후 해방의 날까지 5년5개월 밖에 없는데 ‘고고한 생명-나의 슬픈 반생기’ 등의 글을 보면, 하운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도 다니고 귀국 후에는 함경남도 축산과를 시작으로 경기도 용인군에서 근무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운이 스스로 말하는 학력과 경력에는 사실이 아닌 것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요시카와 나기 교수는 “직접 확인한 결과 세이케이 고등학교 학적부에는 한하운의 본명 한태영도, 창씨개명한 후의 이름인 기요하라 가오루(淸原薰)도 고등과 명단에 없었으니 하운이 이 학교에 입학한 사실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농학원 시절과 중국의 한하운’을 주제로 연구발표를 한 중국 대외경제무역대 최옥산 교수는 “한하운의 중국 행적에는 아직도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의문점이 남아 있다. 한하운이 베이징에 머무를 당시 다닌 북경대학은 1937년 12월 일본의 화북괴뢰정권에 의해 세워진 소위 ‘국립북경대학’으로 명문 북경대학과 전혀 무관한 또 다른 교육 기구”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한하운의 생애를 정확하게 조명하고 보다 진실한 한하운 상을 그리는 작업에서 그의 중국행적들을 추적하고 해명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경희대 고봉준 교수는 ‘세계 상실에 맞선 생명의 영가(靈歌) : 한하운의 시세계’를 통해 “한하운의 시편들 가운데 절대다수는 나병환자, 즉 ‘문둥이’로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사회로부터의 추방․배제의 부당함, 서러움, 고독감 등의 개인적 감정, 그리고 이러한 소외감과 열패감을 ‘자연적 대상’을 통해 내적으로 회복하려는 생명에의 강조와 자연적 서정의 경향이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곧 국가, 법으로부터 추방되어 ‘인간’의 영역으로 떨어진 것인데, 이때의 ‘인간’은 한 존재가 공동체 안에서 국민 또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보장받고 누리는 일체의 법적 권리를 상실하고 오직 타인들의 도덕적 호의에 힘입어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 그리하여 사실상 ‘비(非)인간’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일체의 법적 권리를 상실한 한하운이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한 번 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오(봄 중)”라고 쓴 것처럼 북한을 탈출한 문둥이 시인 처지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일본 유학, 북경대 졸업 등의 과장된 약력을 넣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순열 기자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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