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심은 전정우 서예가

심은 전정우 서예가 ⓒ이연수 기자

“나의 인생은 글씨를 빼고 말할 수 없다. 붓을 잡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57년간 연구하고 연습해온 결정체를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주고 싶다”

천자문 120서체 서예가 심은 전정우 선생은 ‘유예자여(遊藝自如)’작품 전시회를 앞둔 20일 동인천 근방에서 가진 <인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작품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대․중앙 전시실에서 열리는 심은 선생의 전시회에는 120체 720점 천자문 중에서 농필천자문, 서화혼융 작품, 추상서, 부채 작품, 도자기 작품 등 200여점이 전시된다.

심은 전정우(69) 선생은 강화도에서 태어나 17년째 심은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지난 13년 동안 천자문 작품에 전념해 왔다. 그 결과 세계 최초로 120서체 천자문을 완성했다.

심은 선생은 “서체라고 하는 것은 3500년 전에 출현됐다”며 “은나라 갑골문자부터 청동기 시대는 주나라 금문자, 죽간체를 비롯해 한나라 시대부터 종이가 발명되면서 시대별로 서체가 출현했다”는 설명을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천자문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서 “천자문은 주흥사가 지은 대서사시로써 학동들에게 교육교재로 활용돼 왔다”며 “4자로 만들어진 250개의 문장은 역사와 우주, 물리, 인간사, 예의범절, 사상 등이 녹아 있는, 단 한 개의 글자도 겹치지 않는 천 개의 오롯한 글자를 가지고 서예작품을 연구하면 많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2004년 10월부터 그에 대한 연구와 연습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천자문 전문을 한 가지 서체로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전해져 내려온 서체가 천자문 한자 중 몇 십자 정도에 불과해 나머지 9백 몇 십자를 모두 응용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며 “그만큼 완성한 뒤에 찾아오는 희열감이 크지만 그 과정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두 번은 못 한다”고 작품의 난이도와 체력적 한계를 토로했다.

심은 선생은 한 개의 서체에 대해 천자문 6번씩을 썼다. 한 자 한 자 연구하면서 펜으로 써내려가는 초고 천자문에 이어 세필 천자문, 전지 천자문, 국전지 천자문, 서첩 천자문, 그리고 글자 한 개가 손바닥만하게 쓰여지는 92m 에 달하는 천자문까지 써야 1개의 서체로 쓴 천자문 작품이 끝난다. 이런 과정을 120서체, 즉 720번을 쓴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심은 선생은 120서체를 하나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연구한 결과 ‘심은혼융체’가 탄생하게 된다.

그는 “우리말로 쉽게 하면 뒤죽박죽 서체이다”며 “여러 가지 악기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각 서체가 글자를 만나고 또 각 문장과 또 다른 문장이 연결되면서 우주적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공부가 어느 정도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공부의 경지가 어느 정도 올랐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심은 선생이 처음 붓을 잡은 것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이었다.

인천 강화도 출신인 그는 누군가가 글씨를 잘 쓰면 학교 앞 미군부대에서 날마다 뜨고 내리는 선망의 대상 헬리콥터를 탈 수 있다는 말에 학교 ‘서도부’에 들어가 특별활동을 시작했던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붓을 잡으면서 드러난 천부적인 재능은 장학금을 타야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은 중단됐다. 그는 공부에 몰입해 연세대 화공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한국화재보헙협회와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11년 반 가량 직장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도 그는 당시 한국 서예계의 대가 여초 김응현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주경야독했다. 그 과정에서 국전 입선을 3번하고 특선을 1번을 했다. 그러나 소위 잘나가는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진급을 했지만 진급을 하면 붓글씨를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심은 선생은 1986년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붓글씨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5~6년 후 붓글씨가 상당한 수준까지 오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87년에 동아미술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을 수상해 대한민국 서예계를 발칵 뒤집는다.

이러한 그의 예술가적 삶 속에서 심은 선생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3500년 서예사를 연구하고 분석하며 서체의 다양성과 이질성, 그리고 고전과 현대, 전통성과 실험의 맞부딪침 속에서 자신 고유만의 독특한 미감으로 심은체와 심은혼융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남모를 고민도 있다. 최근 미술관 폐관 논란이 불거져 심은 선생의 혼이 담긴 수많은 작품에 대한 보존과 관리에 대한 대책마련이 절실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심은 선생은 "지난 2013년 천자문 1체가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천자문의 저자 주흥사(周興嗣)의 고향인 중국의 하남성 심구(沈丘)에 세워진 천자문 공원과 천자문 박물관을 세워 관광화하는 것을 목도했다"며 "천자문 720본 이상이 있는 강화도에도 이러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병기 (서예가, 서예평론가,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전북대 중어중문과 교수)는 이번에 열리는 심은 전정우 선생 인천시초대전에 부치는 글에서 “심은 선생 작품은 중국이나 일본의 정상급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최우위의 자리를 양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심은 선생의 작품은 누구도 쉽게 따라 갈 수 없는 높은 경계의 작품으로 120가지 자체(字體)와 서체(書體)로 천자문을 720번이나 쓰는 과정에서 한자의 字·書體에 관한 한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심은 선생은 이미 모든 글자에 대한 자체의 구조를 완전히 머리에 담고 있기 때문에 유희하듯이 자유자재로 글씨를 쓴다”며 “두서너 가지 자체에 익숙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여타의 서예가들과 판이한 점이다”고 평가했다.

그는 “심은 선생은 물고기가 물을 만나 물 안에서 놀듯이 서예가가 서예를 만나 서예 안에서 노는 서예가이다”며 “그의 호처럼 스미듯이 숨어들어(沁) 도시의 은자처럼(隱) 서예 안에서 우리 조상들이 추구했던 청정성과 승화성과 해탈성을 지향하는 유예주의 길과 통한다”고 덧붙였다.

심은 선생은 “최근에는 시간개념 없이 공부하고 있다”며 “글자와 그림이 혼합된 반서반화 등 추상서가 나 자신은 물론이고 한국서예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 한다”고 전하며 서체를 넘어선 선 자체의 미학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품에 들어가면 하루 15시간 이상 꼬박 붓을 들고 있지만 예술가는 원칙적으로 24시간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며 “쉬는 것도 꿈꾸는 것도 붓만 안 잡았을 뿐, 작품과 연관해서 사고하기 때문이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어 "이번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이 서예작품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보다 가까이에서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심은 전정우 서예가가 동인천 에 위치한 점화랑표구사에서 표구를 마친 자신의 작품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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