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노동자의 고달픈 한가위(2)

(하편)영창악기 해고자 이상우씨 등 3인, 인천지하철의 정현목씨

2003-09-15     조상기기자
 

<1> 영창악기 이상우, 김상규, 차두식씨



악기제조업 사양산업 인정, "경영난을 노동자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부당"



    차씨 회사가 가압류한 이후 집에 대해 강제집행, 집에서 쫓겨날 판



인천 서구 가좌동 영창악기 본사 앞 천막. 그들의 집이다.

비바람만 간신히 막을 천막 안에 김상규, 이상우, 차두식 이렇게 세 명의 노동자가 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영창악기 회사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서 파업을 주도하다 구속되기도 했고 지금은 모두 해고된 상태다.

 



<영창악기에서 해고된 3명의 전직 노조간부들은 억울해서라도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이다. 천막농성장 앞에 선 이상우 전 노조위원장.   사진 : 조상기 기자> 
 

 

"이미 5월말에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로 인정했어요. 그런데도 회사는

복직시키지 않고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어요. 중앙노동위 결정도 11월쯤 가면 날 것 같은데, 거기서 부당해고가 인정돼도 회사는 불복하고 대법원까지 끌고 갈 생각인가 봐요"



영창악기는 98년부터 계속된 경영악화로 구조조정을 해왔다. 올해도 350여명을 정리해고했다. 노조간부인 이들은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파업도 벌였다. 파업이 끝나자 회사는 이들에게 18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노조 간부에게 가압류를 걸었다.



"영창악기 직원이 최고 많을 땐 580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600여명 밖에 없어요. 길 건너 삼익악기도 지금 300여명이 일하는데 10월쯤에 160여명 정도

로 구조조정 할 겁니다. 피아노도 안 팔리고... 우리도 악기제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지요. 사용자도 경영책임이 있으니 사재를 털어서라도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지 노동자도 수긍할 거 아닙니까."

"사장도 그래요, 우리를 해고한 이유가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서라고 말해요. 우리가 구조조정을 강력히 반대해 왔으니까요."



이렇게 싸우는 동안 이들 세 노동자의 가정형편은 말이 아니다.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차두식씨는 요즘 들어 더 착잡하다. 추석을 쇠고 나면 집을 비워야 한다. 회사측의 가압류 이후 강제집행에 들어가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고3, 두 딸을 둔 김상규(46세)씨도 "집안 생각하면 이 싸움 못한다"고 잘라 말한다. 퇴직금 몇 푼 받아 쪼개 쓰다보니 이마저도 바닥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엉망인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노후를 생각해 들어 둔 적금은 물론 보험도 모조리 해약했지만, 생활비로도 역부족이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상우씨 집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동운동하다 만난 아내여서 이해도 잘 하는 편이지만, 요즘은 쌀이 떨어질 정도로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니 점점 지치는 것 같다."며 "옷가지 바꾸러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털어놓는다.



이들에게 올해만큼은 풍요로운 추석이란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이번 추석도 여전히 천막을 지키며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할 작정이다.



"가족들 생각하면 미안하고 답답하지만 오기로 버티는 겁니다. 억울해서 이대로는 절대 그만 못 둡니다."

세 노동자 가족의 징그러운 이 싸움은 언제쯤 끝이 보일까.



<2>인천지하철 정현목위원장



인천시민 안전을 위한 파업의 대가가 `해고, 벌금 1000만원, 퇴직금 가압류'



"노래 따라부르고, 집회장에 모기향과 라면을 사다날랐다는게 해고 사유"



약속은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개인 대 개인의 약속도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어떠한 집단의 대표와 대표 사이의 약속은 더더욱 확실하게 지켜야 한다. 특

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선 노사간의 약속은, 살얼음판 같아 어느 일방이 지키지 않는 순간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인천지하철노동조합 정현목(32세)위원장은 "지난 6·24파업 후 체결한 합의를 사측이 지키지 않고 있어 노사관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혼탁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노·사 모두 파업을 처음 경험했고, 이로 인한 징계도 처음이어서 자칫 일방이 강공책을 구사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노사 합의서에 '파업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최소화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공사측은 파업 중에 남발한 고소·고발을 한 건도 취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파업종료 후 파업 기간 중 일어난 일을 이유로 5명의 조합원을 추가 고소·고발했습니다. 이는 공사측이 합의를 지킬 뜻이 전혀 없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측의 고소·고발에 따라 지난 5일 인천지방법원은 이미 정위원장에게1000만원, 사무국장과 조직부장에게 각각 700만원씩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공사측은 해고자 개인 퇴직금과 조합비에 1억2000만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도 걸었다. 또 징계위를 열어 파면 4명, 해임 2명, 정직 4명 등 모두 32명을 징계했다. 정위원장도 이 때 구속되고 파면됐다.



"조만간 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이와 별도로 공사측에 징계 재심신청을 했습니다. 재심 결과에 별 기대는 않습니다만 황당하고 부당한 징계라 항의하는 차원에서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해고된 인천지하철 정현목노조위원장이 조합원들에 대한 대량징계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사진 : 조상기 기자>
 

 

정위원장은 이번 대량징계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노조탄압'이라고 믿고 있다. 공사측은 파업에 참가한 노조간부에 한해 징계를 했다고 하나, 순번제로 돌아가며 맡다시피 해 사실상 노조간부로 보기 어려운 12명의 분회장까지 징계를 한 것은 순전히 '민주노조'를 깨기 위한 보복성 징계라고 노조측은 주장한다. 징계 당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로 평상시 노조활동에 적극적인 조합원들이나 위원장, 조직부장과 같은 지부 소속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단다.



"공사측이 작성한 해고사유를 보면 웃기지도 않습니다. 파업집회장에서 노래 따라 부르고, 집회장에 모기향과 라면을 사다 날랐다는 게 해고 사유입니다. 이런 말도 안돼는 징계는 지방노동위에서 징계무효결정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현재 노사간에 맺은 단체협약에 따르면 지방노동위에서 부당해고로 인정하는 즉시 원직 복직시키고 해고기간의 임금도 지급하게끔 돼 있다. 정위원장은 공사측의 최근 행보로 봐서 이러한 단체협약마저 어겨버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단체협약이 지켜지려면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단지 노조활동을 보장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하철을 시민들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회적 책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노조는 공기업의 주인이 회사간부가 아니라 시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사이에 5살짜리 아들을 둔 정위원장은 오는 12월에 둘째 아이가 태

어난다.

"(갑작스런 구속과 해고로) 아내가 많이 힘들어하지만, 노조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해 오던 터라 지금은 담담한 편입니다. 아내는 오히려 저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업계와 달리 명절 때면 오히려 더 바빠지는 운수업종의 특성상 정위원장의 추석 연휴도 일상과 별 반 다를 게 없다. 현장을 돌아다니며 한 명의

조합원이라도 더 만나 노조 조직을 추스르고 11월말에서 12월초로 예정된 노조선거에 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단기적으로는 노조정상화에 힘을 쏟고 장기적으로는 항공, 철도, 버스, 택시노동자들이 연대해 운수산별노조를 만드는데 한 몫 하고 싶다는 정위원장은 "지난 파업으로 조합원들의 노동자 의식이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도 인천지하철에 민주노조의 전통이 이어질 것"으로 확신했다.



정위원장의 노동조합관은 명확하다.

"경영진들이 책상에 앉아 내놓는 안전대책은 허술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직접 안전관리를 하고 있어 어느 곳에 예산이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한지를 단박에 압니다. 이런 노조의 의견을 수렴하기는커녕 대화도 거부하고 오히려 노조를 탄압하는 데만 골몰하는 경영진을 보면 노조위원장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지하철공

사의 주인은 경영진이 아니라 260만 인천시민 모두이며, 노조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합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노조. 정위원장이 살얼음판 같은 공사측과의 노사관계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며 시민의 안전에 더욱 복무하는지, 이제 시민들이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