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석의 문화칼럼] Back to Basic - 차세대 전인 교육의 중요성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 피아노~ 영창!” 이라는 피아노 tv 광고는 8~90년대의 학생 이었다면, 누구나 다 한번 쯤 들어 봤을 것이다. 당연히 음악 학원은 문전 성시를 이루었고, 자연스러운 우리내 또래들이 함께 뛰어노는 놀이터요, 친구들과 불량식품(? )을 먹어가며 사귀던 만남의 공간이었다.
그 시절, 피아노 위의 색연필로 늘 교재를 색칠하고 검정, 하얀색의 영창 피아노를 늘 두들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피아노 건반 한번 틀릴때 마다, 원장님의 30센치 자가 어김없이 내 손바닥을 내리쳤다. 하지만, 그 때는 선생님이 날 왜 때리지? 라는 분노 보다, 나의 손가락이 내 뜻대로 잘 돌아가지 않은 것에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적어도 필자는 그랬다.
우리는 그 시절 일종의 스승에 대한 한없는 신뢰와 존경이 있지 않았었나.
무슨 과목이든, 날 가르치는 분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비록 동네 조그마한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라도 , 스승님에 대한 예의로 스승의 날에 늘 꽃다발과 작은 선물을 챙겨드린 기억이 난다. 교육자 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필자는,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늘 인사를 잘 해라” 였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잘해라” 이렇게 두가지 였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때 보다, 어른들께 인사 하지 않을 때 여지없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지금도 내 기억에 남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기억이 난다. 뭔가 학교 성적은 부족하지만, 좋아하는 일에는 무서운 집념(?) 을 가지고 있었던 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 스승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일본에서 오래 살고, 유학 생활을 하신 담임 선생님은, 나의 어머니와도 관계가 참 좋으셨다. 늘 나의 깨발랄(?)을 인정해 주시고, 심지어는 어머니와 나를 당신의 집에 초대 해 주셔서, 요리도 해 먹고, 하루한 나절을 선생님 집에서 신나게 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랬듯이 나는 늘 선생님을 잘 따랐다. 학교 성적은 노력이 많이 필요했으나, 선생님들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늘 원만했던 기억이 남는다.
필자는 음악가로서 미국, 캐나다, 유럽, 남미 등 여러 대륙을 다녀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였다.
결과 느낀 점은, 대한민국의 교육의 수준은 감히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이었다는 것. 우선, 그 증거로는 , 각나라의 국가를 연주 하면 제대로 된 음정을 내는 평균의 국민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가 거의 최상위 권이다. 월드컵 등 국제대회의 시상식을 봐도 자신의 나라의 국가를 정확한 음정으로 구사하는 국가들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처럼 초등교육에서 음표를 그리며 음악을 배우는 나라는 유럽음악의 본고장 이태리에서도 극히 드물다.
그 다음, 우리의 수학적 사고 능력이다. 가족 끼리든, 친구들 끼리든, 더치페이를 가장 빨리 하는 민족 이다. 아마 보고 배운 문화와 학교의 교육의 수준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지, 덕, 체 의 전인적 교육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과거의 교육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교육의 잘 한 부분을 더 살리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채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거에 반면에 현재의 교육은 지나친 지식 쌓기 위주의 교육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당당히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경제, 문화 , 과학 등 각 분야의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넘치는 인재 강국의 나라가 되게 된 이유는, 바로 우리 선배님들, 즉 우리내 부모님 세대의 한없는 가족에 대한사랑과 헌신된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이 땅에서 , 결국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을 공부 시키시고, 뒷바라지 하셨다. 당신들은 못배우고, 못먹어도 우리 자식들을 위해 죽기 까지 희생하셨다. 그런 희생과 사랑의 교육으로 우리 세대들은 부족함 없이 먹고 배우지 않았을까? 우리는 종종 그런 희생을 잊곤한다. 한 세대들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히 생각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라떼는 말이야”를 정말 음식물 쓰레기 처럼 취급하진 않은가?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가 한없이 무너진다고 한다.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일부 학생들은 스승을 존중하거나, 존경 하지 않는다. 학생의 입장에서의 교사는 그 들이 달마다 구독하는 일종의 서비스 앱 과도 같을 때가 있다.
권위. “Authority” 그 자체는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권위주의 (Authoritarianism), 즉 자신의 이기심으로 그 권위를 남용하고 억압하는 것이 문제이지. 권위자가 피의자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권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부모님의 권위가 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는 부모님의 권위와 책임이 있다, 나를 가르치시는 스승님의 권위와 책임이 있다. 우리는 종종 나의 권리만을 내세워서 나의 책임을 잊지는 않는가.
조금더 초심을 찾으면서 관계 안에서의 예의범절을 다시 세우고, 상대방을 조금 더 존중하고 배려하고, 개개인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인생과 가정, 또 내가 속한 공동체가 바로 설 수 있게 되며, 더 나아가 건강한 지역 사회를 만들고, 그리하여 이 나라가 다시 더 단단하여 그 누구도 분열 하지 못하는 그런 단단한 나라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홍우석 음악가(트럼펫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