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석의 문화칼럼] “피아노 한 대가 바꾼 대한민국의 음악교육”

2025-11-23     편집부
홍우석 음악가(트럼펫 연주자). 인천뉴스

1950년대 후반,  참혹한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다음 세대의 교육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기업이 바로 영창악기였다.

1956년 문을 연 영창은 국내 최초로 피아노를 대량 생산해 보급했고, 이는 음악 교육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에서 대중적 문화 교양의 저변을  확장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1970~80년대에 접어들며  피아노의 붐은 전국을 휩쓸었으며, 가정마다 피아노가 없는 집이 없었다.

90년대 에 들어서서는 ,“맑은 소리~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이란 이 광고 하나로 대한민국에 음악교육이 본격적으로 보편화되었다.

거실 한 켠에 놓인 피아노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가정의 문화적 수준을 상징했고, 자녀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은 부모의 교육열을 드러내는 일종의 사회적 관습이었다.

이때 가장 널리 보급된 브랜드가 바로 영창이었다. 합리적인 가격과 안정된 품질 덕분에 전국 가정과 학교, 학원은 영창 피아노를 중심으로 음악 교육의 토대를 세워갔다.

영창의 기여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0~90년대 세계 시장에 진출한 영창은 독일과 일본의 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3대 피아노 제조사로 성장했다.

해외에서 축적한 기술력은 다시 국내에 환원되었고, 이는 국제 콩쿠르 무대에서 한국 연주자들이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발판이 되었다.

여기에 1990년대 인수한 전자악기 글로벌 브랜드 ‘커즈와일(Kurzweil)’은 음악 교육을 아날로그 건반에서 디지털 창작의 영역으로 넓히며 시대의 변화를 이끌었다.

물론 영창의 길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과 시장 포화로 위기를 겪었고, 한때 법정관리까지 거쳤다.

그러나 2018년 HDC그룹에 인수되면서 ‘HDC영창’으로 새 출발을 선언했다. 이제 이들은 단순한 피아노 제조사가 아니라, 악기·교육·콘텐츠를 아우르는 종합 문화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과거 ‘가정마다 피아노 한 대’라는 상징에서, ‘누구나 음악을 배우고 창작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영창악기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음악 교육을 넘어서 사회적 경제적 성장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피아노 한 대는 아이들의 손끝에서 꿈과 감성을 키워주었고, 사회 전반에 음악적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이제 과제는 다음 세대다. HDC영창이 디지털 전환기에도 여전히 ‘음악 교육의 동반자’로 남을 수 있을지, 그 대답은 앞으로의 무대에서 확인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