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변질이 불러온 경쟁과 사회적 비용의 역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영역을 둘러싼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절대평가 체제에서 시행된 이번 영어시험은 역대 최고 수준의 난이도를 보이며, 수험생들 사이에 “절대평가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불만을 낳았다. 영어는 변별력을 완화하고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절대평가를 도입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이번 시험을 통해 제도의 허점이 다시 드러났고, 교육정책이 왜 일관된 철학을 필요로 하는지 분명히 보여줬다.
절대평가의 도입 취지는 명확했다. 영어 학습을 변별의 수단이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 향상의 과정으로 돌려놓고, 학생들의 불필요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교육 중심의 학습 체계를 안정시키고, 사교육 의존을 줄이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영어시험은 그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지문 구조가 복잡하고 어휘 수준이 높아 상위권조차 체감 난도가 높았으며, 추론·비판형 문항이 대거 등장해 사실상 상대평가식 변별력을 회복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절대평가’는 이름만 남고, 실질은 다시 ‘상대경쟁’으로 돌아갔다.
그 여파는 사교육 시장으로 직결되고 있다. 영어 절대평가 시행 이후 한동안 감소세를 보이던 사교육비가 올해 들어 급등 조짐을 보인다. 대형 학원들은 ‘1등급 완성반’, ‘고난도 독해 집중 프로그램’ 등을 새롭게 개설하며 시장 선점을 서두르고 있다. 학부모들은 공교육만으로는 1등급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에 다시 사교육으로 몰리고 있다. 결국 절대평가가 “사교육 억제 정책”이 아니라 “사교육 부활 신호탄”으로 전락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다. 올해 영어시험에서 1등급을 놓친 상위권 학생들 중 상당수는 재수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한 장학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이 하락한 해에는 재수생 증가율이 평균 7~10%가량 뛰었다.
영어 한 과목이 대학입시에 미치는 상징적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절대평가라 어렵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 막상 높은 체감 난도와 낮은 등급률을 경험하면서 또 한 번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렸다.
재수는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회 전체의 부담을 불러온다. 1년간 재수를 준비하는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평균 2,000만 원을 넘어서고, 숙식·교통 등 부대비용까지 합치면 단기간에 가계지출을 수천만 원 증가시킨다. 일부 중산층 가정은 영어 한 과목의 1등급을 위해 연간 생활비의 절반가량을 학원비로 쓰기도 한다.
여기에 재수로 인한 사회적 기회비용, 즉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생산성 손실까지 고려하면 그 부담은 훨씬 크다. 결국 절대평가의 취지가 흔들리면, 개인의 부담이 가계로, 가계의 부담이 사회 전체로 전이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이에 대해 “절대평가이므로 1등급 비율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제도 운영자가 결과의 파급력에 무관심하다는 태도는 공교육 신뢰를 훼손한다.
절대평가의 취지는 등급별 성취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누구나 준비 가능한 안정적 학습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그 기준이 학생들의 실제 학습역량과 괴리될 경우, 제도는 방향을 잃고 불신만 키운다. 학생들은 “절대평가조차 믿을 수 없다”고 느끼고, 학부모는 다시 사교육에 의존하며, 교육격차는 더 벌어진다.
공교육의 신뢰는 예측 가능한 평가에서 비롯된다. 변별이 아닌 성취를 목표로 하는 절대평가제는, 그 취지가 지켜질 때만 의미가 있다. 교육 당국은 성취기준을 단순 수치로만 바라보지 말고, 평가 결과가 실제 교육 현장과 사회에 어떤 파급을 미치는지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난이도 설계 실패로 인한 사교육 확산과 재수생 증가, 사회비용 증대는 모두 교육정책의 신뢰붕괴에서 비롯된다.
절대평가가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난이도 유지’와 ‘학습 목표의 현실성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평가원이 이를 외면한다면, 학생과 가정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해마다 커질 뿐이다. 교육평가의 목적은 줄 세우기가 아니라 모두에게 도달 가능한 성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수능 영어가 다시 그 본뜻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절대평가는 또 한 번의 ‘이름뿐인 개혁’으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