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 광대뼈가 나오고 눈이 작은 아줌마 자연산 외친다.시장입구 미꾸라지 통을 펼쳐 놓고 자연산 외친다. 손가락이 짧고 손이 두툼한, 배가 봉긋하고 허리에 군살 없는, 벙글벙글 웃을 때마다 뻐드렁니가 드러나는, 까무잡잡 번들번들 구릿빛 얼굴, 파마는 해본 적 없는지 생머리 찰랑이는 눈빛 반짝이는 아줌마.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하루 종일 자연산을 외친다.버스 광고판 성형외과 의사 고개를 빼고 쳐다본다. 허문태 시인은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달을 끌고 가는 사내가 있으며, 리토피아문
봄, 꽃다발 놀러 오시라 가지 흔들어 꽃잎을 날린다.산들바람에도 꽃잎은 부드럽게 유영한다.분홍으로 물든 속곳이 살랑살랑 바람을 유혹한다. 겨우내 숨죽였던 뜨거움을 바람으로 식힌다.쏟아지는 숨소리들이 내려앉아 꽃길을 만든다.소복하게 내려앉은 봄의 정령들이 꽃다발이 된다.-박하리 시집 말이 퍼올리는 말 중에서 박하리 시인은 2012년 에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말이 퍼올리는 말'이 있으며, 전국계간지작품상을 수상했다. 계간 리토피아 편집장이며 막비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놀러
등대 바닷가에 우뚝 선 둥그런 눈이빛줄기를 쏘아댄다 술 취한 만선 비틀거려도뱃길 따라 잘 찾아오라고 달이 어린 별 데리고 다다다 놀 재도총총총 뱃길만 본다.-정령 시집 자자, 나비야 중에서 정령 시인은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연꽃홍수, 크크라는 갑이 있으며, 전국계간지작품상을 수상했다. 막비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불안하다. 잘 돌아가고는 있으리라 믿지만 여기저기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예전 같지 않다. 사는 모습이
생각나는 그 사람 늘씬한 몸매는 아니지만깔끔한 신뢰가 있었다 예능의 기교가 없었으나늘 생활 속에 멜로디가 있었다 시간과 행동의 여유가 있는 듯 보였으나겸손한 절제가 있었다 코스모스와 낙엽과 계곡 숲을유난히 사랑하는 자연 속 사람이었다 김순찬-인천에서 태어나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양대 국문학과에서 박목월 교수로부터 현대문학을 배웠다. 대한주택공사를 정년퇴임하고 현재 고용노동부 부천고용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계간 코스모스문학과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에서 등단하고 활동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인천지부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
작별꽃들은 어머니 가슴에 안겨 있다가세상 밖으로 활짝 피는 것이지만,작별은 어찌 할 거나.꽃숲에 젖는 눈물 새벽마다 강이 된다.―「작별」/박달하 시집 '사립문을 열다' 중에서 박달하 시인= 2018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립문을 열다'가 있으며 막비시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어머니가 피우는 꽃은 아름다운 꽃이다. 꽃은 제가 이뻐 벌나비들이 찾는 줄 알지만 그 아름다움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 아니었으면 꽃으로 피지도 못한다. 어머니의 아름다움이 아
나는 종교에 대한 큰 신앙심은 없다마음에 가시가 돋아나면산사를 찾아갈 뿐이다어젯밤 잠을 자다가심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고눈을 떴다적막이 흐르는 밤나는 나를 확인해 보았다예사로운 일은 아닌 듯스쳐가는 인연들그날따라 새벽은 천천히 밝아왔다혼자 두려움에 지치고 떨었다어떤 운명이 찾아오려나 흐르는 대로 갈 뿐이다영혼은있다,없다,영혼이 머물다 떠난 육신은 하나의 나무토막이다―「인생의 연가」/김을순 시집 『키칠쿰』 중에서 김을순 : 2014년 6월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혼자 구르는 돌, 키칠쿰. 인천
조릿대는 빗방울을 불러 밤새 수다를 떤다.외양간에서 황소 밤새도록 우웅우웅 숨죽여 울지.소리 없는 상처가 가는 달을 밤새도록 묶어두었지.대쪽처럼 살라는 소리가 또르륵또르륵 굴러왔지신작로 내겠다며 땅을 내놓으라는 동네사람들.처마 밑에 장작더미들도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었지밤새 황소가 우웅우웅 울 때마다 한 더미씩 더 쌓여만 갔지조릿대 숲에서 기어 나온 달팽이가 그 소리 야금야금 파먹었지.―「황소」/배아라 시인(시와경계 가을호 수록) 배아라 : 2018년 리토피아로 등단. 발전을 위해 희생도 없지는 않았다. 조
기나긴 겨울 동안 소리없이 누웠다가이른 아침 화들짝 피어나는 꽃들을 보아라길가에서 산비알에서 약속이나 한 듯한꺼번에 일어나 부르는 노래소리를 들어라 세상은 갈라먹기 몰래몰래 뒷걸음치기앞만 있고 뒤는 없는 싸움질이 한창인데아, 고와라 제 자리에서 제 노래 부르며한데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꽃들의 노래여―「꽃들의 노래」/남태식 시인(창작시노래한마당 제8집 수록) 우리는 이제 아름다운 말이 그리 아름답지 못한 시대에 와 있다. 좋은 말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와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시대, 말도 행동적인
나의 보리밭 아침 햇살에 꽃비가 날린다민들레가 낮은 얼굴로 반긴다 보리밭을 매다가 세월에 지쳐호미도 버려둔 채 잠이 들었다 토끼풀 시계에 하얀 꽃이 지고뻐꾸기 노랫소리에 눈을 떴다 씀바귀 한 망태 어깨에 메고송아지 부르면서 발길을 옮긴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지고까칠한 보리도 누렇게 익어간다-윤은한 시집 ‘야생의 시간을 사냥하다’ 중에서 윤은한 시인은 2016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경북 도청에 근무 중이다. 문명 속으로 어쩔 수 없이 달려 들어가는 세상이다. 선택의 여지도 없고, 달아날 방도도 별로 없다. 싫든 좋든 눈부시게 발
오월, 초록 미처 다 피우지 못한 어수선한 조증의 꽃 덜어진 밑자리를서성이다가, 되돌릴 과거는 기억조차 가뭇한 데 벼락처럼 솟은 절벽을 마주하고 울증에 빠진, 조증의 시간 오래도록 지켜낼 꿈을 꾸며 동면에든 뱀처럼 침묵으로 견디다가, 어느 새벽 잠결인 듯 꿈결인 듯 절벽에서 내동댕이쳐져 멍투성이로 사라진, 슬렁슬렁 웃으며 푸른 핏줄 불끈 세우며, 우우우 이 오월의 숲에서 초록의 함성 떼로 내지르며 다시 일어서는, 사내, 한 사내, 한, 꿈의 사내. -남태식 시집『망상가들의 마을』중에서 남태식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b
화려한 오독 늘 푸르고 넉넉한 산이어서늘 평안한 줄 알았는데헐렁한 사내의 낯선 방문에도꿩은 축포를 쏘고소나무는 송홧가루를 뿌리고청설모는 숲을 헤치며 길잡이를 나섰다백수는 누렸을 너도밤나무 발치로 흐르는개울은 여울목을 내 주고산까치 솔새 도라지 산국......환영연을 베푸는산,이토록 기골이 장대한 산도외로움엔 초연할 수 없었던가.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
길 위에 널린 말들 말들이 집을 짓고 길을 만든다.말들이 나무를 심고 새를 키운다.말들은 토담이 되고 토담 속의 동화가 되고 동화 속의 별이 된다.혀끝에 뱅뱅 돌아 나오는 말들은 구름이 되어 비를 내리기도 하고,혀끝을 바람처럼 벗어난 말들은 낙엽 되어 구르다가 사라지기도 한다.말들은 귓볼을 스쳐가는 바람이다.잔잔한 술잔 속의 태풍이다.말들은 토담 속의 아름다운 꿈이다.고요한 꿈속의 한바탕 회오리다.말들이 흔들린다.사람들이 흔들린다.풀잎처럼 세상이 흔들린다.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흔들리다가 휘돌다가 꽃잎처럼 밟혀 사라진다.-박하리 시집
술은 핑계일 뿐 어둠이 술병을 들고 온다.초승달도 한 잔 하고 싶어 한다.한 잔 두 잔 취기가 돌자초승달이 술잔 속으로 끼어든다게슴츠레한 눈으로 이 남자,오늘 하루만 빌려 달라 한다들이키면 사라지고채우면 다시 나타난다.술은 핑계일 뿐 취하는 건 이유가 있다-전국계간지편집자회의 사화집에서 술에 취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부터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복잡한 세상사에 머리가 아파 술을 빌리는 이도 있다. 하루 일이 고단하여 그 피로를 술로 푸는 이도 있다.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술의 뒤로 숨기도
화려한 외출 어젯밤 꿈속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간도 쓸개도 없는 한 사람을 만났는데초승달처럼 웃고 있었다 탁주 한 사발에 호탕하고 선량했던 그였는데허허허 웃음 속엔 평화가 깃들었던 그였는데우울을 못내 사랑하여 우울 씨가 된 그였는데 정신병동에서 설핏 스치고 지나갔던 것 같았는데이제, 우울을 잊고 치매를 사랑하게 되었는데앳된 웃음 머금고 꽃 진 청년이 되어가
어떤 심심풀이 빈 하늘 바라보다 한 잔 하고꽃이 피고 지는 사이사이 한 잔 하고시 한 편 낭송하다 솔깃한 그리움에 한 잔 하고산길에서 주운 바알간 낙엽 두어 장 마주보며 한 잔 하고굳은 혀를 풀려고 이따금 한 잔 하고상강 지나 마음 바빠진 겨울 어깨가 움츠려들어 한 잔 하고스러지고 차오름이 내 마음 같은 달 보며 한 잔 하고창문에 하나 둘 불 켜지면 한 잔
정미소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벼락의 꼬리(리토피아, 9,000원)가 출간되었다. 이번 그의 시집은 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참신한 존재론적 기획이 엿보이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 78편의 작품이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그를 덜어낸 자리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
길 위에 널린 말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의 길을 만들고, 그의 집을 만들고, 그의 사람을 만들고, 그의 태양도 만든다. 그의 말은 벽이 되고, 벽 속에 그림이 된다혀끝으로 돌아나오는 말들은 낙엽이 되어 구르고 하늘의 구름이 되었다 그의 말은 귓볼을 스치고 가는 바람이었고,벽 속에는 회오리로, 컵 속에는 태풍으로 만들어졌다 흔들린다 말이 흔들린다 발
적막이 기다리다 새벽에 눈 뜨면 머리맡에그가 있다 앓고 나서부터는 하룻밤에 몇 번이고 자다 깨어 그를 만난다 밤마다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내 몸뚱이를 샅샅이 쏘아 보고 있다 숨소리가 벽시계 초침에 옮겨 앉는다고요는 이불귀를 붙들고 팽팽하다 새벽빛이 창호지에 스밀 때까지어둠이 자동차에 밟혀 헐어질 때까지-권순 시집 중에서
달맞이꽃 달빛 아래 허리춤을 내리고희멀건 허벅지로 춤 한 번 추고나면이리들 야단이다 시인은눈물을 찔끔거리며 가엽단다 뽀얀 얼굴이어둠에서 익은 달뜬 유혹의 목소리가너무 앳되어 안쓰럽단다꿈길에 들어서는 달밤이란 무대에 알몸으로우유빛 안개를 휘감고 서면나는 낮에는 보이지 않는또 하나의 별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는 본능의 세계이다. 얼마나 본능의 세계에 천착하느냐와
꽃의 또 다른 출구권섬 지금 꽃을 보고 있어. 그 꽃 역시 날 보고 있어. 바람이 어깨에서 그네를 내리면 꽃은 팔랑팔랑 그네를 타고 언덕에 올라. 언덕에서 굴렁쇠를 타고 놀다가 달을 따러 가기도 해. 아이들이 남겨놓은 웃음소리로 허기를 채우고는 그네에 올라 앉아 낮잠을 자. 잠에서 깨어나면 빨간 태양이 입혀준 원피스를 입고 달팽이관 피리를 불어. 그 피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