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인천대 교수, 경제학)

 

▲ 양준호 인천대교수

주지하다시피, 우리 인천에서는 시정부의 이렇다 할 지역 산업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지역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거나 또 지역 내 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즉 지역 산업연관을 강화시켜내고자 하는 지역 산업정책이 ‘행방불명’인지 오래다. 단도직입적으로, 국내 제3의 도시 인천에는 지역 산업정책이라 할 만 한 것이 경제자유구역 정책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송도, 청라, 영종과 같은 경제자유구역만 잘 개발해놓으면 첨단 기술로 무장한 외투기업들이 몰려와 이들이 지역 기업들에게 학습효과를 제공하는 등 좋은 영향을 미쳐 결국 지역 산업경쟁력도 높아지고 또 그로 인해 지역 내 고용과 투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인천시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정책 태도가 도가 넘어섰다는 의미다.

보수정당 출신의 안상수 시장이 이끌던 시정부도 그랬고, 뭔가 좀 다를 것으로 기대했던 송영길 시장의 시정부도 여전히 그러했으며, 나아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다시 보수정당 출신의 유정복 시장의 인천시 역시 충성스럽게도(?) 선대 두 시장의 시정부가 관철하고 있던 지역 산업정책의 기조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정치 세력의 교체에 따른 정책 기조의 변화는커녕, 인천에는 보수정당 개혁정당 할 것 없이 지역 산업정책의 핵심을 경제자유구역 개발에서 찾고 있다. 뼈아픈 얘기일 수 있겠지만, 사실이다. 서울, 부산, 대구, 충남, 강원 등과 같은 광역자치단체에서는, 어떻게든 지역 기업들의 투자가 지역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또 지역의 산업구조가 높은 부가가치와 높은 고용효과를 낼 수 있는 산업 영역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나름 열심히 고민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천은 경제자유구역의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지역 산업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 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지역 경제정책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인천 지역의 산업구조를 어떻게 고도화해낼 것인지 그리고 지역 산업연관을 어떻게 자기 완결적으로 강화시켜낼 것인지에 관한 정책 비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는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및 부품을 인천 밖의 지역에서부터 조달해오고 또 반대로 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중간재를 인천 안에 있는 기업에 납품하지 못 하고 있는, 인천 지역 산업의 왜곡된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이와 같은 지역경제의 파행적인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면야, 어찌 관련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지 않겠는가. 그래도 명색이 선거인데 말이다. 시장선거 전도 그러할진대, 구청장이나 시의원을 뽑는 선거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지금까지의 인천지역 산업정책은, 그리고―적어도 지방선거 공약으로 볼 때 전망되는―앞으로의 인천지역 산업정책도 지역경제에 대해 아무런 파급효과를 내지 못 하고 시민들의 혈세만 축내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개발이라는 사회적 간접자본 정비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내겐 ‘베드타운’으로 보이지 산업단지로는 보이지 않는 경제자유구역이지만, 이런 산업클러스터를 스웨덴의 시스터, 미국 서부의 실리콘벨리, 중국 상하이의 푸동과 같이 국내기업과 외투기업을 균형 있게 유치하여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제대로만 유도해낸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다. 

그러나 정책만 잘 구사하면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경제자유구역 정책이라 하더라도, 사실 전 세계 각국의 ‘개혁’ 또는 ‘리버럴’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들은 대규모 도시개발을 통한 지역 산업정책을 낡은 정책으로 간주한다. 즉 수구보수들의 ‘18번’ 정책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일본의 민주당 계열, 그리고 여타 국가들의 리버럴 정당 출신 시장들이 시정부를 꾸리고 있는 외국의 주요 도시들은 지역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산업단지 또는 산업클러스터 개발과 같은 사회적 간접자본 정비 프로젝트를 접은 지 오래다. 

그곳에서는 이와 같은 ‘땅파기’ 형의 낡은 정책을 넘어 지역산업 발전을 위한 지역 내 네크워크의 구축, 지역 내 지식정보의 집적, 그리고 지역 내 인적자본 개발 등과 같은 이른바 ‘비물질적’ 요소를 지역 산업정책의 키워드로 설정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이끌어 온 서울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인천은 더불어민주당이고 자유한국당이고 할 것 없이, 양대 정당의 지역 정치세력들의 지역 산업정책에 대한 입장은 ‘물질적’ 요소 언저리에서만 표류해왔다. 그것도 경제자유구역 개발뿐이었다.

이와 같이, ‘개혁’ 또는 ‘리버럴’ 정치세력들이 집권하고 있는 국내외 여러 도시들이 그들 지역을 위한 산업정책을 하드웨어(물질적 요소) 중심에서 소프트웨어(비물질적 요소) 중심으로 그 기조를 급선회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기네들 도시의 경제구조가 이제는 예전과 달리 많이 변화했다고 보는, 지역경제에 대한 그들 나름의 객관적인 문제의식 때문이다. 구미와 일본의 도시들은 그들의 지역경제가 이전과는 달리 서비스화, 정보화, 지식경제화와 같은 새로운 현상에 의해 작동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한때 잘 먹히던―그리고 그곳에서도 보수 정치세력들의 지방정치 ‘단골’ 공약으로 제시되고 있는―대규모 산업단지 개발 등과 같은 사회적 간접자본 정비 중심의 정책이 이제 더 이상 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지 못함을 알아차려, 지금은 지역 내 인적자원의 ‘지식’과 ‘창조성’을 극대화하여 이를 지역산업의 기술혁신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지역산업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경제자유구역 개발이 지역경제와 지역산업 발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 하고 있는 인천에서야 말로 이와 같은 과제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국내에선, 지금의 서울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도시의 환경, 문화, 인재를 중시하는 지식주도형 지역 산업정책의 기조를 정립하고 있다.

둘째, ‘지역발전’ 그 자체의 개념과 의미의 다양화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미와 일본의 주요 도시라 하더라도, 그들 역시 ‘지역발전’을 1인당 GRDP로 측정되는 정량적인 경제력 성장 지표를 활용하여 가늠해왔다. 그러나 세계 주요 도시의 ‘개혁’ 또는 ‘리버럴’을 추구하는 정치세력들이 생태환경 및 문화 등과 같은 그 지역 고유의 공유자산(commons)마저 희생시키면서 개발이익과 성장이익을 독점하는 대기업과 지역성장연합들만 살찌우게 하는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지금은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생태환경, 사회, 문화적 측면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것을 지역 산업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즉 보수적인 지방정치 세력들이 강조해온 경제성장이나 산업단지 개발 및 교통 인프라 구축 등과 관련된 대규모 도시개발이 해당 지역 고유의 환경을 파괴하고 또 해당 지역 고유의 인문학적 정체성을 잃게 하며 나아가 모든 도시 또는 지역의 획일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되면서, 세계 주요 도시의 ‘개혁’ 진영 정치세력들은 양적인 경제성장과 물리적 또는 물질적 도시개발이 더 이상 지역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간 지역발전을 GRDP, 인구, 외자유치액, 외투기업 유치 건수 등과 같은 정량적이고도 물질적인 척도로 논의해온 우리 인천에 대한 ‘정문일침’이다.

인천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주요 도시의 ‘개혁’ 또는 ‘리버럴’ 정치세력들의 이와 같은 도시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선거라는 큰 판을 계기로 이에 나서는 시장, 시의원, 구청장, 구의원 후보들이 먼저 인천 지역의 산업 현황의 문제점을 적확히 파악해야 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말이지, 제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개혁’ 진영의 지방정치 세력 나름의 지역 산업정책에 관한 입장이 세워지지, 그렇지 않으면 허구한 날 ‘꼴통 보수’들의 정책 기조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리버럴’ 정치세력들의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해서, 인천 역시 다음과 같이 지역 산업정책의 기조를 전환해나가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특히 ‘개혁’ 또는 ‘진보’를 운운하는 정치세력의 추대를 받고 나선 시장 후보는 더 더욱 그러해야 한다.

첫째,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인프라 정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서의 인프라 정비란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물리적인 것의 개발이 아니라 이른바 ‘사회적 공통자본’으로 불리는 지역 공공자본의 지속적인 축적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 인천 지역만의 사회적자본―지역 시민들간의 협동, 신뢰, 커뮤니케이션, 호혜―, 천혜의 자연자본, 그리고 문화자본의 축적을 정책적으로 유도하여 이를 지역 산업경제와 연관시키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지금껏, 인천에서는 이와 같은 지역 산업정책의 기조는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보수적인 시정부였건 개혁적인 시정부였던 간에 말이다. 

둘째, 서비스화, 지식경제화 등 인천 산업경제 구조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비물질화’ 경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지역개발 방식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지역경제 또는 지역산업을 논의하는데 있어 외부적 요인으로만 간주되어 왔던 지역의 환경, 문화, 지식 등과 같은 것들이 지역경제와 지역산업을 떠받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음에 주목하여, 이와 같은 ‘비물질적’ 요인과 지역 산업 간의 연관을 강화하는 정책들 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국내외 주요 도시들이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창조도시’―시민들이 지역의 문화예술과 인문학적 정체성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그 ‘창조성’을 발휘해내고 또 그것이 지역의 기존 산업과 맞닿게 하여 경제적 또는 기술적 혁신의 동력으로 삼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시―개념을 토대로 하는 지역 산업정책은 참고할 만한 사례 중 하나이다.

시민들의 ‘지식’과 ‘창조성’을 원동력으로 하여 지역의 산업발전을 유도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사회적 간접자본을 아무리 잘 개발한다 하더라도 이는 ‘모래에 물을 뿌리는’ 격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이에 인천 지역 산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 아니, 어쩌면 ‘개혁’ 또는 ‘리버럴’ 운운하는 지역 정치세력들의 향후 재생산 여부가 그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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