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식 시인

 

기나긴 겨울 동안 소리없이 누웠다가

이른 아침 화들짝 피어나는 꽃들을 보아라

길가에서 산비알에서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일어나 부르는 노래소리를 들어라

 

세상은 갈라먹기 몰래몰래 뒷걸음치기

앞만 있고 뒤는 없는 싸움질이 한창인데

아, 고와라 제 자리에서 제 노래 부르며

한데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꽃들의 노래여

―「꽃들의 노래」/남태식 시인(창작시노래한마당 제8집 수록)

 

우리는 이제 아름다운 말이 그리 아름답지 못한 시대에 와 있다. 좋은 말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와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시대, 말도 행동적인 말이 더 필요한 시대, 그러니까 아무래도 무언가에 다급히 쫒기는 시대에 와있다. 여유라는 단어는 이제 부질없는 단어로 전락했다. 기다림 역시 기다림 속에 기대감이 별로 없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미 없는 단어로 추락해 가고 있다. 아름다운 말이 아름답지 못한 시대에는 시가 자리할 곳도 없기 마련이다. 시적 아름다움은 일반적인 먹고 사는 일에는 물론이려니와 국가적 경제에도 정치에도 별로 소용이 없어지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시의 문제에서 기인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시인들의 문제에서도 기인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하루 이틀의 기다림이나 배려도 용납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에 즉각적인 반응을 원하고 자신 역시 즉각적인 반응에 몰입되어 가고 있다. 개인적인 문제이건 사회적인 문제이건 옳고 그름의 잣대가 철저하게 주관화하고 있다.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다리는 여유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 자신의 답도 오류일 수 있다는 불안함과 조심스러움도 깡그리 사라졌다. 자신의 답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기만 하다면 그것이 훗날 오답이 되거나 말거나이다. 전혀 고려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그 답은 자신의 답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서 오는 군중적인 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신념적인 동지만 있다면 자신들의 오류를 점검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자신들이 시대의 흐름과 시대적 답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오만함까지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내 답이 옳다고 주장하려면 다른 사람의 답도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민주 시민의 넉넉한 모습일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따뜻한 힘이 그 원천이기를 바란다. 새로운 세상에는 시의 아름다운 언어들이 한 몫 할 수도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비록 요양원에 모신다 하더라도 늙은 어머니를 내 생명의 근원으로 존중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제아무리 인터넷 바다가 모든 것을 알려준다 하더라도 사람의 때와 사람의 정신이 묻어있는 어른들의 경륜을 존경하기를 바란다. 사람은 사람이 낳았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스승이다. 과학이 사람을 탄생시키지 않았고, 과학이 사람을 가르치지 않았다. 과학을 숭배할 경우에는 사람이 과학의 노예로 전락하는 시기를 서둘러 당기는 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꽃의 암수를 구별하기 어렵다. 다 그저 꽃이다. 바람과 벌나비가 있어 꽃은 연애도 하고 열매도 맺는다. 바라보면 그저 꽃인 꽃들이 꽃을 경계하고 꽃을 거부한다면 꽃은 머지않아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여 꽃은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꽃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 꽃들의 자연스러운 연애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꽃의 색깔과 꽃의 향기와 꽃의 열매를 즐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거룩한 자연의 섭리가 꽃들 속에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꽃을 얼마나 알겠는가. 꽃들 속에도 반란이 있고, 혁명이 있을 수 있다. 꽃들도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서로를 지배하고 서로의 영역을 넘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젠가는 지구를 정복할 날을 꿈꿀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나 그렇다 해도 꽃들은 서두르지 않아 보인다. 끈질기게 기다리면서 서로를 지켜주고 배려하면서 공생 공존의 법칙을 깨부수지 않아 보인다. 꽃들에게 지구 정복은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 요원한 날이어야 진정 아름다운 꽃의 꿈이 될 것이다. 기다릴 줄 아는 꽃들은 사람보다 똑똑하다.(장종권시인/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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