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의 죽음을 역설하라, 시인이여!

인천작가회의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는 시인 17인이 신작시 3편씩을 모아 '17인 신작시집'을 출간했다. 인천작가회의에서 설립한 도서출판 작가들의 제1호 시집으로 출간된 이번 시집에는, 인천작가회의의 고문이면서 시력 40여년의 현역 최고참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태열 시인의 동명의 시를 표제로 한 '17인신작시집 - 자연바다'는 강태열 시인을 비롯하여 모두 17인의 각자 개성에 빛나는 시적 발언들이 모여 시의 성찬을 베풀고 있다.
80년대에 창작과비평사에서 년간 시집의 형태로 '○○인신작시집'이 출간되고 이러한 시집들이 수 만부 이상 팔렸던 ‘시의 시대’를 경험한 바 있지만, 이번에 출간된 '17인 신작시집'은 오히려 시를 비롯한 문학의 전반적 위축이 나날이 깊어가는 상황에서 17인의 어쩌면 명망도 없는 시인들이 모여 오직 시를 통해서 문학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주목받을 만하다.
표제작인 강태열 시인의 시 '자연바다'가 보여주는 시적 상상력의 폭은 실로 광활하다.

뚜껑이 없는
하늘 아래
뚜껑이 없는
지구의 애정이
몸서리 치는
바다

떨어지기 싫어서
몸부림 치는
바다의 표정
- '자연바다'전문

동양적 우주관에 입각한 시적 통찰은 오늘 우리 시단의 주류시들이 보여주는 신서정의 미학적 가벼움에 커다란 사상적 자극을 제공한다.
강태열 시인과는 다른 자리에서 21세기 바다의 도시 인천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인들이 길워 올린 시적 성찰은 각기 다른 시의 옷을 입고 시집의 편편마다에 아로새겨져 있다. 시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 인천 주변과 바다를 소재로 한 시를 비롯하여 불의에 맞섰던 작가회의의 문학정신을 보여주는 사회, 역사적 참여시들도 여러 편 선보이고 있고, 문학자 특유의 자의식에 빛나는 시적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들과 함께 아름다운 서정시들이 시적 개성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면서 그러나 여전히 현실의 부당함에 맞서 이를 바로잡고자 시민운동의 일선에 서 있는 신현수 시인이 기록하고 있는 현실비판의 시적언어는 이제 모두 낡은 것이라 치부하는 시적 언어다. 그러나 여전히 신현수 시인은 현실의 부당함에 대한 항편을 산문적 언어를 통해 지적하고 반문하기를 기치지 않는다.

풍문에 듣자하니 무슨 사기를 당해
대리운전을 한다던가, 노가다를 한다던가,
야, 고집피우지 말고 좀 치사하더라도
일단 사랑, 이 들어간 노래를 해.
내가 만일, 이나 사랑투, 그런 말랑말랑한 거로
국보법, 통일, 그런 거 말고.
노래 끝나고 혼자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록 가수 뒤통수에 대고 혼잣말 해보는데
그래도 조금 있으면 2집 나온다고 상기되었던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록 가수,
- '테레비에 나오지 않는 어느 록 가수'부분

오버그라운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묵묵히 음반을 준비하는 어느 록 가수의 비애를 시인은 위로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비애를 그 누구보다 몸으로 절실히 느끼는 이야말로 신현수 시인 그 자신이자, 이 앤쏠로지 시집에 시를 실은 17인의 시인들 그들 모두이리라. 그래서 그들은 이처럼 신작시를 3편씩 모아서 첫 번째 화려하지는 않되 알찬 소출을 ‘자연바다’에 던지고 있는 것이리라.

그간 인천작가회의에서 발행했던 계간지 '작가들'을 중심으로 시작활동을 전개했던 인천작가회의 시 분과의 시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문학적 행위를 드러내기 위해 첫 번째 앤쏠로지 시집을 빈한한 시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갹출하여 출간했다. 문학의 죽음이 공공연하게 운위되고 있는 시대에 맞서 오히려 순정한 시의 힘만으로 갈수록 실종되어가는 문학의 존재가치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려는 시인들의 시도는 참으로 값진 것이리라.
시인들은 이번 시집을 첫 출발로 삼아서 새해부터는 보다 시의 본령에 충실한 앤쏠로지 시집을 지속적으로 1년에 두 권씩 지속적으로 출간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들은 ‘동인(同人)’ 을 꿈꾸지도 않는다. 이번 시집이 그런 것처럼, “어떤 특별한 인위적 통일성보다는 시인들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낼 수 있는 열린 시집을 지향” 한다는 것이다. *

도서출판 작가들 간, A5변형 반양장본, 책값 6,000원.

ㅁ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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