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어도(細於島)는 뭍에서 1.2㎞ 떨어져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면적은 여의도의 1/20인 0.47㎢로서 20가구 37명이 오순도순 살고 있는 조그만 섬이다. 수도권에서 불과 20㎞ 정도 떨어져 있는 인천 서구의 하나 남은 유인도서이기도 하다.

1993년 민간여객선이 끊어진 후 행정선(정서진호)이 무료로 하루 한 번씩 육지와 연결하고 있다. 덕분에 외지인의 출입이 뜸하여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고 주민들도 전통방식으로 살고 있어 옛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청라지구와 김포 간 해안도로를 따라 시, 경계쯤에 이르면 세어도행 선착장에 도착한다. 철제와 목조데크 아래로 잿빛과 갯내음 물씬 나는 다리를 지나 행정선에 오르면 10분 후 섬에 내린다. 예전에는 만석부두에서 어선을 타고 한 시간 가까이 돌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선착장도 신설되고 행정선도 운항하니 참 많이 편리해졌다.

세어도는 원창동에 속하며 육지에서 보면 가늘게 늘어져 누워있는 모습이다. 우리말로는 「세루」또는 서천도(西遷島)라고 불렀다.

「세루」는 서쪽에 멀리 머문다는 뜻으로 서유(西留)라고 부르던 것이 변한 것이라고 했다. 서천 또한 서쪽 멀리 귀양가 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섬은 애초에 경서동 육지 끝인 금산 땅에서 6㎞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바닷물길에는 큰 갯골이 있어 걸어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인근에는 청라도, 사도(뱀섬), 일도, 장도(노렴), 곰바위, 쟁끼섬, 까투렴, 율도(밤염), 소염도, 장금도, 목섬, 호도(범섬)등이 있었으나 갯벌 매립으로 거의 사라졌다.

처음 원창동과 석남동 앞바다가 매립되어 율도와 소염도가 육지화되었다. 그리고 1980년 2차로 백석동, 검암동, 연희동 앞바다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 청라 매립지(동아 매립지)에 포함되면서 세어도와 호도만 남고 모든 섬이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지도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행히 두 섬은 큰 물길이 가로막고 있어 존치하게 된 연유다.

1992년 검단 앞바다에도 면도, 길무도, 붕도, 육도, 축도 등이 있었으나 청라와 함께 매립지로 지정되어 수도권 2천만 주민들의 쓰레기를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되었다.

또 하나 한약재의 명약 난지초(蘭芝草)가 자생했던 「난점」이라 부르던 난지도는 간척 사업으로 만든 방죽에 연결되어 육지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그 가운데를 인천공항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년 전에 어촌 탐방 취재차 20년 만에 세어도를 찾았다.

섬에 내리니 송림이 울창해지고 둘레길도 잘 만들어졌다. 갯벌 위로는 정오의 햇살이 반짝이고 쏴한 바람 또한 시원하다.

그러나 내가 알던 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어촌계장 출신인 행정선의 C선장과 팔순 원로인 L선생만이 반갑게 맞이한다. C선장집에 차려놓은 방금 잡았다는 깔대기(농어새끼)회 앞에 앉으니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이곳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 염해로 흐르는 큰 물길을 따라 한 팔씩 하는 힘 좋은 농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다. L선생은 신혼 때 멋모르고 새색시를 태우고 단둘이 낚시하던 얘기부터 꺼낸다.

낚시에 걸려 30여 분간 실랑이 끝에 물 위로 떠오른 놈은 사람 얼굴 두 배나 되는 농어 대물이었다. 시뻘건 아가리를 잔뜩 벌리고 「꾹, 꾹」소리를 내는 농어를 본 색시는 뜰채로 도와주기는커녕, 혼비백산하여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이후 오늘날까지 그런 큰 놈은 본 적이 없단다.

더워지는 계절, 농어는 식탁을 빛나게 해주는 잘생긴 물고기다.

미끼는 「쏙」이라고 하는 가재 종류를 좋아하는데 숭어처럼 새끼에서 어미가 되기까지 이름이 달라지는 출세어(出世魚)로서, 어려서는 「깔대기」라고 부른다. 뱃전에서 회를 친 살점에서는 무지갯빛 색깔이 선명하고 아이스크림 녹듯 달콤한 맛이 아직도 입안을 맴도는 듯하다.

어느 봄날, 타령 잘하는 이성 친구 서넛과 작당하여 나룻배를 타고 농어 낚시를 나갔다. 이곳저곳 터지는 환호와 쾌재 속에 튼실한 농어 입질이 심심치가 않다. 배 한편에서는 회를 치고 타령 소리에 장단을 맞추다 보니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간다. 이 좋은 계절 뱃놀이는 꽃놀이보다 즐겁고 동(動) 적인 풍류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이곳의 초봄 두 달은 잠자리채 같은 그물로 「시라시」라고 부르는 실뱀장어 잡이가 한창이다. 필리핀 해구에서 산란하여 「쿠로시오」해류를 타고 어미가 살던 강으로 성육회유해 오는 놈을 잡기 위해 소형어선들이 몰려들어 경쟁도 치열하다. 등뼈가 훤히 들여다뵈는 5㎝도 안 되는 작고 연약한 놈을 다칠세라 붓으로 선별하여 수집상에게 넘겨준다.

수량은 ㎏당 3천 마리쯤 되고 가격은 최고 2천만 원까지 호가하니 귀하디귀한 놈이라 하겠다.

당시에는 거의 일본이나 대만으로 수출하였는데 지금도 양식장에서는 기르는 것일 뿐 인공산란과 부화를 통한 완전양식은 불가능하다. 이만큼 수익성 좋은 실금(실뱀장어가 금덩어리 같다는 은어)이야말로 봄 한철 노다지였던 것이다.

지금은 인근 신공항 건설과, 율도 발전소, 쓰레기 매립장 침출수 영향 등으로 어족자원이 많이 줄었다지만 천혜의 갯벌은 영양상태가 양호하고 싱싱하여 바지락, 가무락, 맛조개들이 잘 자라고 있다.

섬 주위로부터 강화도 앞까지 드넓은 갯벌, 싱그러운 바람, 맑은 공기와 적요함이 자연인으로 만든다. 언제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육지에서 아득히 보이던 곳이 매립으로 훨씬 가깝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직도 인천 앞바다의 「숨겨진 보물」같은 원시 공존의 섬, 때 묻지 않은 인심이다. 시곗바늘이 멈추어 있는 은자(隱者)의 마을로 지명하고 싶다. 상점도 없고 차량도 다니지 않는 그야말로 옛 시대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주민들도 눈을 뜨는가?

도심 속의 오지 낙도를 벗어나 조개나 게 등을 직접 잡는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망둥이 낚시도 상품화한다.

망둥이는 초여름부터 살찌기 시작하여 고추가 빨갛게 익는 가을에 씨알이 굵어진다. 이때부터 늦가을까지 갯골은 물론 선착장에서도 낚는 스릴을 느낄 수가 있다.

근 3㎞에 이르는 둘레길 북쪽 정자에 올라 고즈넉한 갯벌이 주는 정중동의 모습을 본다. 잿빛의 황량함 속에 무한한 생명력을 포용하고 있는 갯벌, 모든 것을 수용하는 어머니 같은 위대함이다.

해안가 소나무 군락지에는 고목 33그루가 푸르름을 더해주고 바람결에 서걱대는 갈대들의 합창도 들려온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오가며 의아했던 것 중 하나가 섬토지 대부분이 이왕가(李王家)소유였던 거다. 아마 조선시대 세곡선이 기항하던 곳이어서 그리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지금은 외지인 소유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혹시 이곳에 외풍이 불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신념으로 애향심이 각별하다.

돌아오는 길 정서진으로 석양이 넘어갈 즈음, 선장부인이 쪄 놓은 하지감자를 한입 깨물어 본다. 파삭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문득 성어(成語)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떠오르는 것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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