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둥어 출처 위키백과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보물창고다. 특히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하수처리장 역할로 생태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갯벌바다에는 터줏대감으로 알려진 망둥이가 사는데 이름이 투박하고 향토색 짙게 전라도에서는 ‘운조리’, 경상도 지방에서는 ‘꼬시래기’라고 부른다.

생김이 날렵치 못하고 배 밑에 빨판이 있어 슬금슬금 헤엄치며 머리와 입이 크다.

더구나 낚시에 걸렸다 떨어져 혼쭐난 놈이 미끼를 다시 물만큼 미련하여 놀림과 비유도 많다.

흔히 쓰이는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말은 남이 하는 것을 따라하며 설치는 것을 의미하고 “망둥이 제동무 잡아먹기”는 친척 간에 싸움을 뜻한다. 그리고 소금에 절이는 것을 ‘얼간’이라고 하는데 얼간망둥이는 대충 간을 맞춘 것처럼 됨됨이가 똑똑하지 못하고 다소 모자라는 것을 비유한다.

이처럼 망둥이는 예전부터 어리석거나 부족함의 대명사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위험하거나 먹이를 포식할 때의 순간적 동작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듯 미물일망정 특기는 다 있는 모양이다.

낚싯대를 만드는 것도 한팔 길이의 실에 납뽕과 바늘 두 개를 매단 후 대낚에 묶으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낚시가 잘 되는 곳은 밀물 때 갯골이 갈라지는 교차지점이 포인트인데 골을 따라 몰려들어오기 때문이다. 초보자도 특별한 기술 없이 뽕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것 즉 릴링만 하면 손쉽게 낚을 수가 있다. 처음에는 톡톡대다가 강한 입질로 줄을 쭉 잡아당기는데 이때는 입속에 낚싯바늘이 들어간 후이니 놓칠 리 없고 부르르 떨리는 손맛이 묵직하다.

망둥이는 일년생으로 밭에서 풋고추가 자라는 것과 비슷하여 7월쯤 손가락 크기가 8월에는 손바닥만 하고 고추가 붉게 영그는 가을에는 약 20센티미터 정도 자란다. 이때가 살이 찌고 힘이 좋아 낚는 재미가 가장 좋다. 날이 차가워지면 소위 구멍 망둥이라고 하여 갯벌 속으로 숨어드는데 누런빛을 띈 것이 명태만하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정경이지만 인천교 매립지는 동구 송림동과 서구 가좌동 사이에 큰 갯골을 낀 바다였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이곳에는 수백 명의 강태공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물길 속에서 낚시를 했다.

목에는 나무로 만든 낚시통을 걸고 씨알 굵은 놈을 낚을 때마다 머리 위로 한 바퀴 휘돌리며 ‘원산말뚝이요’를 외친다. 유래는 잘 모르겠으나 말뚝같이 굵은 놈을 낚았다는 제스처거나 성취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밀물이 깊어질수록 이곳저곳에서 바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의기양양한 꾼들은 마냥 즐거워한다.

때론 갯지렁이 미끼가 동이나 제살을 썰어 매달아도 물리고 빈 바늘에 쌍걸이로 걸리기도 했다. 지금은 갯지렁이를 판매하지만 그때는 자급자족 식으로 개흙을 파고 잡아 소금에 절여서 여러 날을 두고 사용한다. 갯지렁이가 바닷물 속에서 비린내와 야광 빛이 강하여 망둥이를 유인하는 데는 최고의 미끼이기 때문이다.

어느 땐가 형들과 함께 그곳에 갔을 때 벗어 놓은 옷을 지키게 하고 저들끼리 들어가 버려 축대 돌 틈에 옷을 숨기고 쫒아 들어갔다가 몽땅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그 하잘것없는 애들 러닝셔츠와 땀에 절은 반바지마저 집어가던 궁핍한 시절이었다. 요즘 아파트 재활용 옷 보관함에 가득한 메이커 옷들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석양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얼굴과 목덜미에 소금기가 허옇게 앉았고 개흙이 덜 씻긴 다리는 한없이 무거웠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돌아보면 그리움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 그 갯벌이 그립다

이른 새벽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군자역에 내려 염전 제방 길을 걸으면 바다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희끄무레한 소금창고 뒤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둑을 넘어서면 발바닥에 느끼는 차갑고 미끈한 감촉과 콧속으로 스미는 신선한 갯향, 유장한 세월 속에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낸 밀가루 반죽같이 고운 개흙, 해조음을 들으며 갯벌로 들어선다. 썰물 따라 걷는 텅 빈 갯벌은 허전하지만 밀물 따라 돌아올 마음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낚시에 좋은 물때는 조금(음력 8일과 23일)을 사나흘 지나 조차(潮差)가 점차 커지는 날부터 사리(보름과 그믐)까지다. 사리 때는 바닷물이 팔꿈치만큼 서서 갯골을 와글거리며 구르듯 들어온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끼룩대는 갈매기 울음을 신호로 밀물이 시작되는 것이다.

드디어 물끝 따라 첨병처럼 들어오는 망둥이를 향해 낚시를 시작한다. 걸어 나간 만큼 되돌아오며 발목과 무릎까지 빠지는 갯벌을 종일 걷는데다 볕이 뜨거울 때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나 시원하게 부는 해풍에 땀을 식히고 연신 낚아 올리는 재미에 빠지다 보면 힘든 것도 잊게 된다.

때때로 낚시에 몰입하다 뒷갯골을 타고 퍼져버린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부른다는 야릇한 바람소리를 들으면 물귀신 울음 같다며 두려워했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갯벌낚시에 비해 배 위나 선착장에서 편하게 하는 낚시가 대세인데 스릴도 덜할 뿐 아니라 낚는 재미도 크지 않으리라 갯벌낚시가 주는 묘미란 것이 성취감과 후련함이 있고 다음 낚시 갈 일주일동안 재충전과 활력을 주는 운동효과가 크니 힘들지만 또다시 기다려지는 마력이 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할까. 잡은 망둥이를 조리해 먹는 맛도 잊을 수가 없다. 매운탕은 비늘이 없어 손질하기 쉽고 비교적 간단하다. 내장만 빼고 생태탕 끓이듯 하면 되는데 시원하고 담백한 것이 생태와 식감이 비슷하지만 기름기가 없고 더 부드러워 메기맛과 비슷하다.

간장조림은 약이 오른 풋고추를 냄비 바닥에 깔고 바짝 졸이는데 매콤하고 짭조름한 것을 통째로 씹는 맛이 술안주로 제격이다.

요즘엔 회도 쳐서 먹지만 가을날 씨알 굵은 놈을 배를 째서 빨랫줄이나 처마 밑에 말린 후 밥 위에 찌거나 구워 먹는 것이 별미다. 잘 말린 놈을 독안에 넣어두면 상하지도 않고 겨울까지 보관도 가능하다. 처녀 적 누님이 찬물 말은 밥과 함께 말린 망둥이를 구워 고추장에 찍어 먹기를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

이제 이 고장에서 갯벌 망둥이 낚시는 사라졌다. 알게 모르게 수천만 평의 갯벌이 사라진 후 망둥이도 추억만 남긴 채 떠나갔다.

더구나 쉼 없이 흘러드는 공해물질로 피부에 부스럼이 나고 꼬리가 잘리고 눈이 먼 온전치 못한 놈들이 자꾸만 눈에 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업보인 것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 일렁이는 아쉬움뿐이다.

망둥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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