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아베의 시대'가 끝나고 마침내 '스가 일본 총리 시대'의 막이 열리게 됐다. 일본 특유의 파벌정치의 특성상 이변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예상 대로 지난 14일 아베 전 총리의 후원과 자민당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의 지지를 받은 스가 요시히데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스가는 16일 국회의 선출 절차를 거쳐 제 99대 총리가 될 예정이다.

그는 아키타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라는 점과 당내 파벌이 없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대내적으로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위기 극복, 대외적으로는 악화일로인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 등의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더구나 그의 임기가 아베 전 총리의 잔여임기인 내년 9월까지라는 점도 그의 행보를 옥죄는 조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 정가에서는 그가 임기 중 국회 해산과 총선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관심은 스가의 대외정책에 집중돼 있다. 스가의 대외정책이 아베 전 총리와 어떤 차별성을 가질 것인지, 한일관계와 중일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등이 핵심 관심사이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은 '대외관계의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선 스가 요시히데가 아베 정권에서 대외정책을 다뤄본 경험이 없는 데다, '외교는 아베 전 총리와 상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일본 천황제에서 존재하던 '상왕제'를 받아들여 아베 전 총리를 상왕으로 받들겠다는 뜻에 다름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한마디로 아베의 '가케무샤'(影武者 - 일본 전국시대 당시 군주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대역)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종합해 보면 대외정책의 큰 틀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우나,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전술적 변화의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우선 한일관계의 경우, 그는 수교 이후 최악으로 악화된 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과거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발언하는 등 대한 강경발언을 한 적이 있으나, 이념적 극우주의자인 아베와는 다른 온건파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화주의자 가지야마 세이로쿠 전 관방장관을 존경하고, 친한 성향의 공명당과 친분이 깊은 인물이다. 경제 위기 극복과 코로나19 방역 성과를 위해서도 한국과 제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중일관계의 경우,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아베가 미중 갈등 국면에서 확고하게 친미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만큼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를 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일 국방장관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미일 안보조약의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한 만큼 운신폭이 더욱 좁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일은 당분간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일 관계도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스가가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아베가 납치 문제 해결에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는 만큼 당분간 해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등 국내현안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여서 북일간 논란거리를 만들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결국 '스가 총리 시대'에도 동북아 국제관계는 갈등과 긴장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는 스가가 자신의 세력이 없는 정치인이고, 아베가 '상왕' 역할을 하는 권력 구조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그가 향후 총선 승리를 통해 여론의 지지를 확고히하고 총리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경우, '아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동북아 정책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스가는 아베의 '가케무샤'(그림자 무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쇼군'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외무성 초청 시즈오카현립대 초빙교수, 중국 외교부 초청 칭화대 방문학자 등으로 활동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남양주시 국제협력 특별고문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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