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운동계곡 옆 쇠락한 우우당 모습 안타까워

▲ 우우당의 모습 ⓒ 김철관

석가탄신일을 하루 앞둔 20일 오전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1번 출구를 나오자 연등이 가로수처럼 이어져 있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수락산 입구 한 식당에서 직장 동료들과 모처럼 만나 회포를 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날은 6.2지방선거 선거유세가 첫 시작한 터라, 등산로 입구는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원들이 각 지지후보를 홍보하는 활동이 눈에 많이 띠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도 많았다. 수락산 입구 은빛아파트 옆을 지나 모임 장소로 향했다. 등산객에 끼어 정신없이 발길을 재촉했다. 앞날(19일) 저녁 동료들과 약주를 거하게 마신 탓에 갈증이 심했다.

구세주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등산로 바로 입구에 노원구에서 관리하는 ‘벽운동천’이라는 약수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흠뻑 약수를 마셨다. 그리고 또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길 양쪽 옆 나무에는 연등이 계속 이어졌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절을 찾은 사람들을 배려하기위해 등산로를 정비하는 공사도 한창이었다.

▲ 등산객 ⓒ 김철관

▲ 등산로 공사중 ⓒ 김철관

연등을 유심히 살펴보니 부처 화상과 ‘염불사’라는 절 이름이 선명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인근 염불사 스님과 신도들이 걸어 놓은 모양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연등과 많은 등산객 그리고 녹음이 우거진 수락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약수터를 지나자 푯말이 보였다. 수락산 정상인 주봉까지 4.8km, 귀임봉까지 1km, 수락산역까지 1.2km라는 푯말이었다. 약속 장소인 식당 위치도 잘 모르는 초행길이었다. 가는 도중 우측에 ‘우우당’이라고 쓴 안내문이 보였다. 우우당 옆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락골의 옛이름 벽운동 계곡이다.

명소로 알려진 벽운동 계곡 옆에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두 번이나 지낸 홍봉한(1713~1778)의 벽운동 별장 '우우당(友于堂)'우뚝 서 있었다. 우우당을 지나면 염불사가 나온다. 하지만 우우당이 가는 길을 멈추게 했다. 역사를 통해 ‘홍봉한’이란 사람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봉한의 묘는 부부인인 한산 이씨와 합장돼 경기도 고양시 문봉동에 있다. 홍봉한은 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다.

사도세자는 영조 뒤를 이어 등극한 정조의 아버지이다. 홍봉한의 벽운동 별장 우우당이 이곳 수락산 입구인 서울 노원구 상계동 1241번지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우당은 영풍부원군 홍봉한이 영조 37년과 44년 두 번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을 때 별장 안채의 일부이다. 별장안채, 지금의 생활관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 ‘友于堂’ 현판이 걸려있다. 정문 앞 살구나무 근처에는 승마대가 현재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 우우당과 승가대 ⓒ 김철관

홍씨 일문이 한창 위세를 떨칠 때 벽운동 별장에는 문인정객들이 모여들어 탄금대와 백운루  우우당은 초만원을 이뤘다고 한다. 우우당은 당대의 석학과 정치인들이 신학과 충효를 논하였다. 홍봉한의 맏딸인 혜경궁 홍씨도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서정성을 키운 곳이다. 훗날 혜경궁 홍씨는 이를 밑바탕으로 해 ‘한중록’ 같은 문장을 남기기도 했다. 

 벽운동의 주인인 홍봉한은 정조 즉위 3년 만인 무술(1778년) 2월에 세상과 작별했고 이후 100년 뒤 이병직의 고조부인 부원군이 벽운동의 명승지를 사들여 5대에 걸쳐 지켜오다가 이병직 대(1957년 6월)에 이르러 덕성학원(덕성여자대학교)에서 매입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덕성여대 시설과에서 재건축을 위한 설계를 진행 중에 있어 입장은 불가했다.

이날 굳게 잠긴 정문, 옆 담장 위에서 본 쇠락한 우우당의 모습은 무척 초라해 보였다. 우우당 지붕은 온통 풀로 우거져 있었고, 그냥 방치돼 폐가나 다름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우당 살구나무 앞 승마대만이 깔끔히 정돈돼 있는 듯했다. 한참동안 이곳 주변을 맴돌았다. 나름대로 유적지로 값어치가 있는 곳이기에 폐가로 방치된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 더운 날씨 족구하는 동료들 ⓒ 김철관

담장에서 초라한 우우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동료들이 모여 있는 식당을 찾기 위해 한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모임장소를 지나 한참 걸어올라 왔던 것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재촉해 수락산 입구로 향했다.

동료들은 무척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족구를 하고 있었다. 나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족구 두 게임을 뛰었다. 경기가 끝나고 모처럼 운동을 해서인지 정말 온몸이 뻐근했다. 식당 야외에서 오리 백숙과 훈제, 파전 등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니 취한 줄도 몰랐다.

모임이 끝나고, 동료들과 조금 아쉬움감이 있어 수락산 역 입구 호프집에서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셨다. 이곳 모임으로 인해 홍봉한의 별장 '우우당'을 접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모임을 끝내고 당고개역 근처에 사는 직장 한 후배와 함께 수락산역에서 마들역을 거쳐, 상계동을 지나 당고개역까지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기분이 상쾌했다. 당고개역으로 향하는 도중 슈퍼마켓에 들려 캔 맥주를 샀다.

▲ 선거운동 ⓒ 김철관

후배와 인근 공원 정자에 앉아 마시는 맥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오는 길 곳곳은 6.2지방선거 후보 운동원들이 한 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귓구멍을 찌를 듯했다. 특히 당고개역 입구에서는 더욱 요란했다. 당고개역 근처 식당에서 후배와 저녁을 했고, 곧바로 버스를 타고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있는 집을 향했다. 버스 안에서 들은 라디오 뉴스는 '천안함 폭파 북한 소행'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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