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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바래봉 철쭉, 박정희가 만든거 아세요?양떼 사라진지 20년, 봄이면 철쭉만 '가득'
   
 
  ▲ 남원시 운봉읍에 들어선 순간, 진분홍 색으로 변해가는 지리산 바래봉(사진 아래)과 철쭉제를 알리는 홍보문구(사진 위)가 눈에 띈다. ⓒ 박주현  
 

"20년 전만 해도 호주산 양들로 가득했던 바래봉 자락에 철쭉과 외지사람들이 울긋불긋 자리를 메우고 있으니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제..."

올해로 18회째인 지리산 바래봉 철쭉제 행사 안내표지가 곳곳에 나부끼고 있는 남원시 운봉읍과 바래봉 주변 둘레길은 외지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꽃구경보다 사람구경이 더 재미있다고 한다. 철쭉제가 열리는 행사기간 동안 매년 평균 20여만 명이 바래봉을 찾기 때문이다. 바래봉 산허리까지 시원하게 데려다주는 뻥 뚫린 포장길도 한 몫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운봉읍에 들어서는 초입 길에서부터 짙은 진분홍 철쭉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 눈에 들어오는 무성한 지리산 숲속에 펼쳐진 진분홍 향연은 앞으로 한달여 동안 장관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철쭉을 비롯한 허브의 색과 향에 취한 관광객들의 설레는 마음과는 달리 이곳 농민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까다로운 고랭지 농사를 포기하고 해마다 도시로 떠나는 이농현상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만5000여 명에 달하던 운봉읍 인구는 현재 4000여 명에 불과하다. 

바래봉 철쭉군락,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산물'? 

  
"어서오세요"...사람이 아닌 큰 인형들이 탐방객들을 반기고 있는 바래봉 철쭉제 행사장 입구.
ⓒ 박주현
바래봉

그나마 그 절반은 노령인구가 차지하고 있어서 농사조차 외지인들에게 의존하는 처지다. 더욱이 광우병 파동은 이곳 축산농가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20여년 전만 해도 수만 마리의 양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곳 농촌인구 감소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바래봉 인근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다. 

바래봉과 양떼의 몹쓸 인연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산 이름과 형상에서부터 기구한 운명이 묻어난다. 산의 모습이 '바리'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른 산 이름이다.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을 뜻하는 '바리'와 봉우리 모양이 비슷하게 생긴데서 유래했다. 또 승려들이 쓰고 다니던 삿갓 모양과 비슷해 유래됐다고도 한다. 

  
바래봉 철쭉제 행사장 주변에는 철쭉 뿐만 아니라 허브밸리를 비롯한 각종 식물들이 함께하고 있다.
ⓒ 박주현
바래봉

해발 1167미터의 바래봉은 지리산의 팔랑치, 부운치, 세동치, 세걸산, 정령치 능선과 연결돼 있다. 마치 한줄기처럼 이어져 보기 좋은 산세를 지니고 있다. 이 중 바래봉은 전국 제일의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바래봉 철쭉은 사람의 허리나 키 정도 크기로 4월 하순에 산 아래에서 피기 시작해 5월 하순까지 진한 색과 향을 정상까지 뽐낸다. 

그러나 바래봉 철쭉군락이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 시절의 즉흥적인 개발정책 산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1970년대 호주에서 들여온 수많은 양떼가 사라지기까지 20여년 동안 바래봉 아래에서부터 정상까지 자연이 훼손된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찾은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실제로 5월 5일 이곳을 찾은 관광객 서너명에게 이 사실을 알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바래봉 철쭉제의 기원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제안한 농가소득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바로 지리산 양떼와 양치기, 양몰이 개들을 불러들였다. 1972년 '한-호 면양시범농장'이 시작되면서 바래봉 아래에는 국립종축장의 분소가 설치되고 바래봉 일대는 양치기 목동과 양몰이 개가 수만 마리의 양떼를 이끌며 양털을 깎는 풍경도 선보이기 시작했다.

지리산 자락까지 파고 든 박정희 '장기집권 프로젝트' 

  
<경향신문> 1986년 3월 7일자 11면.
ⓒ 경향신문
바래봉

당시 언론에도 이런 풍경이 자주 묘사됐다. <경향신문> 1986년 3월 7일 11면에는 운봉읍 바래봉에 얼마나 많은 양들이 들어왔는지 짐작케 한다. '고원의 아침 햇살...양떼도 겨울 축사 박차고...'란 제목의 기사는 "전북 남원군 운봉면 바래봉 위로 떠오른 아침 해가 40만평의 방대한 초원에 봄의 햇살을 퍼붓는다"며 "해발 500미터의 국립종축원의 1600마리의 면양떼가 겨우내 갇혀 있던 대형축사를 박차고 나와 봄의 초원을 달린다"고 사진과 함께 전했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지리산 고원의 양떼를 희망의 메시지처럼 전하는 게 유행이었다. 

또한 1970년 5월 1일 <매일경제> 2면에는 '3년간 8억 투입 종축운봉지장 개발계획 확정'이란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기사는 "농림부는 1일 지리산지구의 축산개발에 선도역할을 할 국립종축장운봉지장(전북 남원군 운봉면) 종합개발계획을 확정했다"며 "올해부터 3개년에 걸쳐 추진될 이 사업에는 70년에 2억7천50만원, 71년에 9천8백만원, 72년에 5억2천8백만원 등 도합 8억9천6백만원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 ‘한-호 면양 시범목장’ 프로젝트에 의해 들어서기 시작한 지리산 바래봉 정상의 양떼 모습.
ⓒ 자료사진(지리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 등)
바래봉

이어 1970년 11월 11일 국내 언론들은 '전북 운봉지구에 면양 시범목장 호서 64만불 지원'이란 제목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한국과 호주정부는 18일 전라북도 남원지구에 약2천4백ha의 '한-호 면양 시범목장'을 설치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다음해인 1971년 4월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또한 그 무렵인 1969년 6월엔 박정희의 3선 출마를 위한 개헌 움직임이 진행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시작되고, 그해 7월 17일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위원회'가 결성됐다. 한국사회 전체가 박정희 장기독재 프로젝트에 숨이 콱 막혀 질식위기에 내몰린 때였다.

이러한 박정희 장기집권 프로젝트는 지리산 자락까지 파고들었다. 1972년 6월 17일 드디어 '호주 면양 천두 도착'이란 제목의 기사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때 국내 언론들은 "한국과 호주 두 나라가 '콜롬보' 계획에 의해 들여온 호주산 양 1천마리가 도착, 16일 전북 남원군 운봉면에 설치된 한호 면양 시범목장에 입식되었다"며 "운봉면의 면양시범목장은 호주산 양이 한국의 지형과 기후에서 번식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해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고 정치체제를 개혁한다"는 미명 아래 초헌법적 국가긴급권을 발동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동시에 전국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어 10일 이내에 헌법개정안을 작성하여 국민투표로써 확정하도록 했는데, 이 헌법이 바로 유신헌법이다. 그해 12월 23일엔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간접선거에 의해 선출한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단지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박정희 장기집권 프로젝트'는 국내외 할 것 없이 총망라된 것이었다.

양떼들, 20여년 지리산 자락 '훼손'...독성 강한 철쭉은 '활짝' 

  
양떼 대신 모형 멧돼지들이 탐방객들을 반기고 있는 모습.
ⓒ 박주현
바래봉

지리산 바래봉을 호주산 면양들로 가득 메운 시점도 바로 이 무렵이다. 그런데 그때 양들이 다른 풀이나 나무는 모조리 뜯어먹어 산이 황폐해졌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만은 먹지 않아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다고 마을사람들은 회고한다. 산비탈을 초지로 만들기 위해서 구획 속에 다수의 양을 몰아넣어 관목과 풀을 모조리 뜯어먹게 한 뒤 발굽에 패인 곳에 목초 씨앗을 뿌리고 다음 구획으로 옮겨 가는 '제경법'을 처음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바래봉 일대는 철저하게 파괴됐다. 지리산이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고 1971년 관리사무소가 설치됐지만, 바래봉 산허리까지 양떼를 위한 도로는 아무런 차질 없이 무분별하게 건설됐다. 그러다 마침내 양떼산업도 급속히 쇠퇴기에 접어든다. 1975년 한국과 호주 간의 면양 시범 목장 공동관리가 종료하고, 1981년부터 한우와 면양 복합 사육으로 기능을 전환하면서 서서히 양들이 주목받지 못했다. 

바래봉 아래에 설치됐던 국립종축장이 가축유전자원시험장으로 축소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도 기구한 역사가 묻어난다. 현재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에 자리한 가축유전자원시험장은 지난 1971년 우리나라와 호주간 면양시범목장 계획에 의해 국립종축장 운봉지장으로 설립됐다. 그러다 1975년 한-호 면양시범목장 공동관리가 종료되고 1981년부터 한우와 면양 복합 사육으로 기능을 전환하게 된다. 이어 1994년 12월에 농촌진흥청 축산연구소 가축유전자원시험장으로 개편, 현재는 한우와 흑염소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과거처럼 양에 관한 연구나 관리는 없어진 지 오래다. 

  
바래봉 정상에 오르는 길엔 양떼 대신 철쯕과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다.
ⓒ 박주현
바래봉

1971년 우리나라와 호주 간 면양 시범 목장 계획에 의해 국립종축장 운봉지장이 처음 설립된 이후 1990년대 들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바래봉 방목이 중단되기까지 양떼들은 20여년간 지리산에서 '박정희 프로젝트'의 희생양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만 했다. 바래봉 주변의 많은 나무와 울창한 숲들도 희생이 됐지만 점차 무성해진 산철쭉은 오히려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바래봉 일대 689ha(2067천평)의 규모에 방목한 면양들이 독성이 있는 철쭉만 남기고 잡목과 풀을 모두 먹어버림으로써 자연적으로 철쭉만 남아 군락을 형성한 탓이다. 산철쭉의 독성은 진달래를 '참꽃', 철쭉을 '개꽃'으로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즉, 철쭉에는 살충력이 있고 재채기를 유발하는 '그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란 독성물질이 들어 있음이 학술적으로도 밝혀졌다. 

어경연 서울대공원동물원 수의사는 지난 2009년 <한국임상수의학회지>에 낸 논문에서 면양 4마리와 재래산양 5마리에게 정원수를 가지치기 한 철쭉을 먹이로 준 뒤 무기력, 침 흘림, 구토, 호흡곤란 등의 중독증상이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흔히 진달래는 화전 등 요리 재료로 쓰고 야산에서 꽃을 따 먹기도 하지만 철쭉과 진달래를 구분하지 않으면 사람도 일시적 중독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무분별한 자연훼손, 더딘 복원과 재앙 안겨준다 

  
바래봉에서 바라본 운봉읍(좌)과 정령치(우) 전경.
ⓒ 박주현
바래봉

철쭉이 치명적인 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양떼들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양떼가 다니던 바래봉 바로 그 길을 지금은 철쭉과 탐방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산철쭉은  바래봉 기슭이 시작되는 곳부터 탐방로 양쪽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바래봉 정상부터 능선을 따라 팔랑치와 부운치에 이르는 능선 양쪽에 터널을 이룬다. 이러한 철쭉군락의 면적은 무려 22㏊에 이른다. 여기에 최근 남원시가 중점적으로 주진해 온 허브산업과 연계한 바래봉 허브밸리를 비롯한 각종 식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식물원 등이 주변을 함께 메우고 있다. 

산철쭉을 즐길 수 있는 산행은 정령치에서 시작하여 고리봉, 세걸산, 세동치, 부운치를 거쳐 팔랑치에 이른 뒤 바래봉 정상에 오르는 16㎞ 정도의 코스가 있는데,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짧은 코스로는 바래봉 아래에서 시작하여 정상에 오른 뒤 팔랑치, 동남계곡을 거쳐 산내면 내령리로 하산하는 9㎞ 거리의 코스가 있는데, 4시간 정도 소요된다. 부근에는 실상사, 화엄사, 천은사 등의 고찰과 뱀사골, 백무동계곡 등의 지리산 자락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양떼가 남긴 '선물'이 한시적이라는 데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도로, 숙박시설 등 허브산업과 연계한 잇단 개발은 바래봉 자연의 복원력을 더디게 하고 있고 약 20년 동안 바래봉을 완강히 지키던 산철쭉 군락까지 흔들고 있다. 

'민족의 영산' 또는 '어머니산', '한반도 허파'로 부르는 지리산이야말로 풍부한 물질과 쾌적한 환경은 차치하더라도 우리 삶의 근원이자 원천인 동시에 인류의 향수가 밴 고향이다. 역사와 문화, 심지어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질곡을 굽이굽이 끌어안고 닮아가는 지리산은 우리의 운명과도 같은 산이다. 

'숲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  바래봉 철쭉제 행사는 이러한 물음과 함께 지리산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고 보전하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또한 개발과 보존, 복원의 딜레마에서 훼손을 반복하는 인간은 결국 자연과 멀어지고 있음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훼손돼가는 4대강 역시 마찬가지다. 개발만을 내세운 무분별한 자연훼손은 더딘 복원과 재앙을 후손에게 안겨 준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반성할 때다.

박주현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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