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프레임에 갇힌 통합진보당 사태

▲ 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차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당권파 중앙위원과 참관인들이 의장석이 있는 단상으로 뛰쳐올라 이를 막는 당직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딱 걸렸어!" 

"I Got You(딱 걸렸어)"의 줄임말에서 비롯된 가차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이 언론보도의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차저널리즘은 미국학계에서 소개되기 시작해 국내에서도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언론이 특정 정치인 또는 공인의 실수나 해프닝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를 말한다. 긍정적인 면보다는 주로 부정적인 면을 꼬투리삼아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이에 포함된다. 

팽팽한 정치국면에서의 이슈전환 또는 물타기 등을 노리는 부정주의적 저널리즘 형태다. 때문에 의도성이 짙다. 커뮤니케이션의 속보성,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한 디지털 미디어시대를 맞아 날로 치열해져 만가는 언론사들 간의 특종경쟁으로 인해 가차저널리즘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자사의 이념적 성향에 반하는 이슈나 사건에 대해 언론이 왜곡·과장하거나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형태가 기사뿐만 아니라 제목과 사진, 만평, 만화 등에서도 자주 드러나고 있다. 경계하지 않으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최근 보수신문들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원색적 부정보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진보진영 전체를 향한 색깔공제로 연일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반복적 과장보도들에선 "딱 걸렸어", 혹은 "잘 걸렸어"란 복심이 읽힌다. 이 바람에 민간인 사찰, 대통령 자신 또는 측근들을 향하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수사, 광우병 불안으로 다시 등장한 촛불집회, MBC·KBS·YTN 등 지상파 방송과 연합뉴스, <국민일보>의 최장 파업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들이 점점 지면에서 축소되거나 사라져가는 양상이다. 

통합진보당 파행을 마치 기다려 왔다는 듯이 내분이 일자마자 '친북', '종북', '민족해방', '주사파' 등의 이념적 표현이 난무한 색깔 프레임에 가두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반면, 다른 이슈들은 잠재우는 보수신문들의 보도에서 가차저널리적 행태가 짙게 드러나고 있다. 

"딱 걸렸어"... '가차저널리즘'에 갇힌 통합진보당 

  
<조선닷컴> 13일 오전 8시30분 캡쳐화면.
ⓒ 조선닷컴
통합진보당

'아수라장이 된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당권파의 단상 난입… 조준호, 폭행당하고 옷 찢어져' -<조선닷컴> 13일 오전 8시 30분.
'주먹·발길질 본 아이… 첫 공개 진보 생얼' -<조인스닷컴> 13일 오전 8시 30분.
'당권파 단상점거로 중앙위 회의중단…물리적 충돌 난장판' -<동아닷컴> 13일 오전 8시 30분. 

13일, 보수신문들은 신문을 발행하지 않은 일요일에도 자사 인터넷판을 통해 일제히 헤드라인 뉴스로 전날 밤 통합진보당 파행 소식을 크게 다뤘다. 제목에서부터 진보세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가득찼다. 월요일자 지면의 해설과 사설이 얼마나 요란할지 짐작케 한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이하 <조중동>)는 13일 인터넷판에서 '폭력'과 '충돌'을 키워드로 통합진보당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날 다른 매체들도 통합진보당의 파행 소식을 비중있게 전했지만, 보수신문들이 취해 온 통합진보당에 관한 그간의 보도행태는 '가차저널리즘'적 성격이 짙게 배어났다는 점에서 다르다. 아닌 게 아니라 다음날인 14일자 <조중동>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1면과 사설 등에서 색깔 프레임에 진보를 가두고 신나게 두들겼다. 

먼저 <조선>은 '통합 주먹당'이란 제목 아래 통합진보당 중앙회의 파행 사진을 큼지막하게 내보낸 데 이어 '진보당 종북 사교 집단의 광기'란 제목의 사설에서 다시 별 대안 없이 이념적 덧씌우기 공세에 열중했다. 사설은 "12일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에서 NL(민족해방) 주사파, '경기동부연합'으로 불리는 당권파와 그 돌격대원들의 집단 광기를 목격했다"며 "국민은 이번 진보당 사태를 통해 그동안 진보라는 가면 뒤에 감춰졌던 '종북 사교 집단'의 민낯을 보게 됐다"고 진보진영을 향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이어 사설은 "진보당 종북 세력은 가슴에 '인권과 평화'라는 명찰을 달고 다니면서도 북한 수용소의 처참한 실상엔 눈을 감았다. 김씨 왕조가 주민 1년치 식량을 미사일 한 발에 날려 버리는 데 대해서도 입 한 번 뻥끗하지 않았다"며 "이 사교 집단은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는 거짓 선전을 하며 서울 한복판에서 경찰을 폭행하고 경찰 버스를 불태우고,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바로 그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도 이날 '통합진보, 정당 사상 최악 폭력, 주사파 진보, 민주주의를 집단폭행하다'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와  '통합진보당 이 정도면 정당 해산 요건 된다'란 사설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설은 특히 "민족해방(NL)계 당권파 참석자들은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흔적이 역력하다"며 "통진당의 이런 종북적 행태가 당권파의 치밀한 사전 기획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머리채 잡힌 당대표…이 장면, 올 대선 구도 흔드나', '멱살 잡고 옷 찢고…200명 단상 난동 막장 드라마'란 제목의 관련기사들과 큼지막한 사진을 1면과 해설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이어 '진보당 당권파 폭력은 민주주의 파괴다'란 사설에서 비교적 점잖게 나무랐다. 그러면서 민주당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사설은 "제1 야당 민주당이 이런 진보당과 총선연대와 정책연합을 한 것은 옳은 것이었나"라며 "당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당 밖의 권위'가 칼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매섭게 질타했다.

<조중동>, 대안제시 없는 '진보 때리기' 열중, 왜? 

그동안 보수신문들은 1면과 사설 등에서 통합진보당 내부 파행이 불거질 때마다 '친북', '통일전선', '주사파' 등에 비유하는가 하면 심지어 '북한을 닮았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비수를 겨냥해 왔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비리의혹이 일자마자 '건수'를 제대로 잡았다는 듯이 '보수신문'들은 다른 이슈들은 제쳐두고 통합진보당 관련 기사들을 내보내면서 연일 색깔론을 꺼내 들었다. 

<조선일보>는 7일자 5면 '낯선, 국민에겐 너무 낯선 진보당 장악세력'란 제목의 기사에서 "당의 주요 인사들이 자주 쓰는 '동지' '통일전선' '노선' '혁명' '척탄병' '세작질' 등은 주사파들이 즐겨 쓰던 용어"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조선>은 9일 '이런 진보당이 진보라면 세계가 웃을 것'이란 제목을 사설로 뽑았다. 사설은 "진보라는 것은 역사가 어느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믿고 자기들이 그 역사의 진행 방향 쪽에 서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이라며 진보세력에 맹공을 가했다. "진보는 나쁜 행동을 관행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지 않고, 과거의 나쁜 관행을 개선하고 개혁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세력"으로 제멋대로 규정했다.

<동아일보>도 대놓고 '북한을 닮았다'고 흥분했다. 신문은 7일 사설에서 "NL계 당권파는 자신들끼리 똘똘 뭉치는 폐쇄성이 강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직문화가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날 5면에선 '일심회 간첩단 사건'을 꺼내들기도 했다. 이어 <동아>는 10일 '민노당 일심회와 통진당 부정경선 대응은 복사판'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통진당 이정희 공동대표(전 민노당 대표)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에 대한 '당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검증 공청회'에서 보인 태도는 민노당 때 일심회 사건 대응의 판박이 같다"고 몰아붙였다. 

<중앙일보>도 9일 '진보의 비판도 외면하는 진보당'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진보세력 전체를 매도했다. 사설은 "소수 진보세력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문제"라며 "보수와 진보 간 정치공방이 아니라 민주절차를 무시한 몰상식과 반민주성에 대한 비판"이라고 확대 해석했다.

반민주적·몰이성적 행태를 드러내 보이고도 이를 민주적으로 수습하지 못한 통합진보당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그렇다고 이를 핑계 삼아 매일 반복적으로 자사의 이념석 성향에 반하는 진보를 향해 원색적인 비판에 열중하는 가차자널리즘적 보도행태에선 대안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진보의 가치를 흠집 내기 위한 무시무시한 수사어만 가득할 뿐이다. 

'낡은 진보가 죽어야 새로운 진보가 산다' 

  
<경향신문> 14일 사설 캡쳐화면.
ⓒ 경향신문
통합민주당

통합진보당의 파행을 지켜보던 진보신문들도 비판적 기사와 사설을 쏟아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대안제시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보수신문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경향신문>은 14일 '낡은 진보가 죽어야 새로운 진보가 산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최악의 폭거를 저질렀다"고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대안도 제시했다. 

사설은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과 인사들은 당권파만 탓하며 충격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고 강조한 뒤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진보진영의 구성원들은 모두 통합진보당 당권파라는 괴물이 생겨나는 데 방관하거나 방조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설은 "낡은 진보에 조종을 울리고 새로운 진보의 싹을 틔우는 데 진보진영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특히 통합진보당을 구성하는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합진보당 내부의 양심적 세력도 조속한 시일 내에 경쟁부문 비례대표 당선자·후보의 총사퇴를 관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날 <한겨레>는 '이런 후진적 정당에 진보의 미래 맡길 수 있나'란 사설에서 따가운 질책과 대안을 던졌다. 사설은 "이번 사태로 한국 진보정치의 후진성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곪은 상처를 도려내지 않으면 앞으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사설은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통합진보당 내부 동력으로 가능할지, 진보정치판 전체를 헤쳐모여 해야 할지는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할 문제"라며 "곪은 상처를 도려내지 않으면 앞으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충고했다. 

신문은 사설 말미에서 "국민들은 진보의 자정능력을 의심하고 있다"며 "설사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미래를 개척해내고야 마는 진보의 저력을 국민들에게 다시 보여주기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통합진보당, 진짜 싸워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다 

  
<한겨레> 14일 오전 캡쳐화면.
ⓒ 한겨레
통합진보당

통합민주당이 파행을 겪고 있는 사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규탄 촛불행렬과 22명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쌍용차 정리해고 희생자 추모집회,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며 펼쳐지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위한 자전거 행진', 방송사 파업이 최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지금 통합진보당이 진짜 싸워야 할 곳은 당내가 아닌 바로 이런 현장 아닐까? 소외되고 탄압받는 '약자'의 이름으로 정당의석을 얻은 통합진보당 아닌가?

그렇다면 누구보다 그들을 외면해선 안 되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그들이 투쟁하는 순간에도 책상과 사무실에서 싸움을 벌이며 보기에도 낯부끄럽고 민망한 언행을 내비치는 것은 그들을 두 번 세 번 울리는 것과 같다. 말로만 앞세우는 진보는 보수가 진보 흉내 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진보를 접는 게 낫다.

게다가 4·11 총선이 야권의 패배로 끝난 지 고작 한 달이 지났다. 더욱이 국가의 미래와 운명을 가를 대통령선거를 7개월 앞두고 있다. MB정권의 부도덕성을 심판하고 민주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진보진영과 야권이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통합진보당이 보여준 비리·부정 의혹과 폭력 등으로 점철된 파행은 진보를 기치로 한 정당으로써 옳지 못한 처사임에 분명하다.

당의 간부를 비롯한 당원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과 쇄신을 위해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기득권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희망의 정치풍토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무엇보다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진보진영이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 위해선 진보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처참하게 분당하거나 막을 내릴 순 없다.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진상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진보의 이름으로 혁신을 실천해 나간다면 더욱 땅이 굳어질 수도 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민주적 정권 교체의 밥상을 발로 차고 구정물을 끼얹는 진보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은 지금 한가로이 앉아 밥그릇 싸움을 하거나 분열을 지켜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무능한 진보의 족쇄에 스스로 갇힐 뿐이다. 이제라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기 바란다. 지금 길 위에 서있는 수많은 약자들은 통합진보당이 혁신과 인적 쇄신을 통해 진보진영에 희망을 밝혀줄 것을 간곡히 주문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