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팬션

 

워낙 외진 곳이라 설명 드려도 찾기가 좀 힘들 텐데요.

자동차로 한참을 올라오시다가 좌측 길로 꺾어 들어오시면,

버섯마을 어귀에 눈이 부리부리한 벅수머리가 서 있고요.

거기서 마을 세 개를 더 지나 좌회전, 우회전, 우회전, 좌회전,

좌회전해서 30미터쯤 가면 회양목 울타리가 빙 둘러쳐진 집입니다.

앞마당에는 돌로 메운 우물이 있고 뒷곁에는 묵정밭이 있습니다.

마당 옆으로는 노루오줌 같은 도랑물이 갈지자로 흘러가고 있지요.

 

잡초가 웃자란 밭두렁에서 뭉게구름이 뻐끔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곳의 행정구역상 주소를 말씀 드리자면,

우주국 은하도 태양군 지구면 봉분리 18번지입니다.

굳이 나비에게 물어 보시겠다면 지구까지는 잘 안내하겠지만,

길을 잃을 수 있사오니 지구에 와서는 다시 전화를 주십시오.

전화번호는 공팔공 팔베개 천사를 걸어 김삿갓을 찾으면 됩니다.

쇼핑호스트가 봉분에 나와 있는 김삿갓을 방송으로 불러줄 겁니다.

 

전화를 주시면 득달같이 모시러 가겠습니다.

삿갓팬션은 언제나 여러분을 왕처럼 모시겠습니다.

혹여 살면서 남에게 못할 짓을 하신 분들도 신분을 세탁해서,

천국행 열차표를 끊어줄 수 있는 특급매니저 김삿갓입니다.

꽃상여를 빠르고 안전하게 모시는 여러분의 나비가 되겠습니다.

빨리 전화하십시오. 몇 자리 남지 않았습니다.

예약하신 분에 한해 특별히 삿갓모양의 봉분을 만들어 드립니다.

 

환절기 때는 성수기라 방이 없을 수 있으니 지금 바로 예약하세요.

이제 두어 자리 남았습니다. 죽지 않았다고 망설이지 마십시오.

내가 갈 곳은 내가 마련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 천국행 티켓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매진 임박.

-계간 리토피아 47호에서 이외현

이외현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연구원. 

 

세상 만사 변하는 것이 이치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생명체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 하나일 것이다. 세상 변하는 이치가 옳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변하는 것이 꼭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인지 또는 행복한 것인지, 그것은 확인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인류는 행복이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줄기찬 희망을 안고 오늘도 내일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거듭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분야이건 홍보가 핵심전략이 된 시대다. 상품비의 상당한 부분을 홍보비에 할애하더라도 홍보 없이는 아무 것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시대다. 그야말로 홍보가 세상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지경이다. 생활용품만이 아니다. 보험상품도, 금융상품도, 교육상품도, 의료상품도, 이제는 자치단체와 국가기관마저도 홍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어 그야말로 홍보에 사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공원묘지나 납골당, 무덤자리까지 홍보에 들어간 지 꽤 오래되었다. 살아생전 행복만이 아니라 죽어 저승에 가는 길조차 미리 편안한 길과 자리를 예약해야 하는 세상이니 참으로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매우 씨니컬하다. 풍자적이고 역설적인 시의 흐름에 해학적인 분위기까지 곁들여져 읽고 나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실소란 정곡을 찔린 후에 터져 나오는 야릇한 웃음이다. 허를 찔리고 나면 우리는 웃는다. 스스로 허를 알고 있으니 모르는 척하는 것은 어쩌면 더 큰 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혹은 현대문명이 가는 길이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휩쓸려 가지 않으면 도태 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가는 중이다. 함께 무너져가는 중이다.

반면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왜 가는 것인지, 어떻게 가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다리가 있으니 걷는 것이고, 머리가 있으니 생각하는 것이고, 입이 있으니 말하는 것이다. 문명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인류의 생존은 언제까지일까, 따위는 현존하는 우리에게는 부질없는 질문이다. 인류의 미래는 미래의 인간들이나 걱정해야할 일이다. 그들이 어떻게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이지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다. 아마도 그들도 위기를 잘 극복하며 그들 다음 세대에 지구를 건강하게 물려줄 것이다. 그러길 바랄 뿐인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다음 세대에 건더기 없는 희망만을 남겨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시의 눈을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시인의 눈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인의 본능과 예지적 능력이 시인에 따라 일정 부분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눈 속에 세상의 변화와 흥망성쇠가 담겨있으며, 인류의 미래를 짐작할 만한 신비스러운 단서가 숨어 있을 수 있으니, 시 속에서 불분명한 미래를 극복할 무한한 생명 에너지를 건져 올리는 일이 보다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시는 우리들의 삶이며 아름답고 건강해야할 우리들의 미래이기도 하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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