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스를 먹으며

 

돈가스 같은

연애를 생각한다 돈가스를 먹으며

튀김가루에 뒤덮여 노릇노릇 튀겨진 돈의

살을 먹으며 돈의 울음을 먹으며 돈의

낄낄거림을 먹으며 돈의 비명을 먹으며

 

어딘가에 밤마다 교교히 달빛 내릴 이승에서

아아, 돈가스를 먹으며

-리토피아 44호에서

 

 

이경림

 

1989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토씨찾기', '상자들' 등, 시산문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지리산문학상 수상. 인천작가회의 회장 역임. 중앙대 출강.

 

돈가스라는 말은 돼지고기 튀김이라는 말이다. 돈가스는 돼지를 뜻하는 일본어 돈(ton)과 영어 커틀릿(cutlet)의 일본식 발음인 가스(gasu)가 합쳐진 말이라는 것이 사전적 해석이다. 커틀릿은 고기・생선・야채 따위를 다져 동글납작하게 만든 뒤에 튀김옷을 입혀 익힌 것이라고 한다. 시인은 이 돈가스를 먹으며 연애를 생각한다. 돈가스와 연애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그의 연애가 돈가스 같은 것이었을까.

돈가스를 나누면 물론 돈과 가스다. 아마도 돈과 가스라는 두 소리 중에서 어느 하나가 그의 상상력을 발동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돈임을 알게 된다. 동음에서 기인하는 의미 이동현상이 발생했다고 보아야 한다. 시인의 눈은 절대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무한지경으로 그 상상력을 확대해나가며 의미를 변질시켜 나간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기 멋대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논리적인 변화와 이동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정확하게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로 인해 시는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말이나 논리로는 접근이나 해독이 쉽지 않은 것이 시인의 상상력이다. 그러나 동시에 독자들의 해독 능력도 항상 독자들의 일반적인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성이나 지적 수준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감각이나 상상력에 있어서는 시인의 감각과 상상력에 여지없이 닿아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명체의 본질 파악에 있어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본능적인 점에 있어서는 그 반응이 생명체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는 독자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시에는 좋은 독자가 있는 것이다. 쉽게 읽히는 시만이 좋은 시가 아닌 것이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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