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나라

 

강아지 한 마리가 절름거리며 길을 건넌다.

강아지 한 마리가 절름거리며 뒤를 따라간다.

강아지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건너서 인도를 지나서 골목길을 지나서

쓰레기통을 지나서 소방호스를 넘어서

버려진 빗자루를 돌아서 통나무를 돌아서

강아지 두 마리가 절름거리며 어디로 가고 있다.

똥 묻은 강아지가 앞서서 절름거린다.

오줌 저린 강아지가 뒤따라 절름거린다.

삼계탕집 앞을 지나서 보신탕집 앞을 지나서

애견센타를 지나서 동물병원을 지나서

강아지 두 마리가 절름거리며 가고 있다.

있을 성 싶지 않은 어딘가로 가고 있다.

 

장종권

전북 김제 생.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나례>,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시작메모

금수만도 못하다는 말은 제 새끼마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개만도 못하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 하는 말일까. 옳은 말은 아니겠으나 오래 전에 개들에게도 사람 못지않은 저들끼리의 질서가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다. 만화 같은 이야기이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당연히 개만한 사람이나 개 같은 사람은 그나마 나을 법도 하다. 헌데 사람이 개 취급도 못 받는 세상이 있다면 그런 세상을 과연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엄연히 개하고는 격이 다르다. 사람이 개처럼 살 수도 없고, 개처럼 취급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말에 절대로 개라는 말을 함께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강아지가 호화스러운 아파트에서 고급 음식을 먹고 편안한 이부자리 펴고 잔다 해도, 아무리 강아지가 조금만 아프면 곧 바로 병원으로 가서 치료도 받고 수술도 제 때 받고 약도 먹고 한다 해도, 없는 사람이 아무리 잘 곳이 없어서 한겨울 거리에서 자다가 얼어 죽는다 해도, 아무리 사람이 몸이 아파 병원에도 못가고 비명을 질러대다가 이승을 뜬다 해도, 사람은 강아지보다는 신분이 높고 격이 한 차원 다른 존재이니까 절대로 개하고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항간의 소문에는 자신이 강아지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아니면 오히려 강아지 신세가 부럽다는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한다. 이상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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