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原罪

뱀을 설죽이면 다시살아나 반드시 원수를 갚는다던 어른들이 들려준 말 때문에 그날 어린 우리들은 가재를잡다 돌에 설맞아 달아나는 뱀을 정신없이 뒤따라가 두려움으로 단단해진 돌을 던져 뱀을 죽였다. 흙냄새를 맡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누군가의 말에 그뱀을 동구밖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직도 동구 밖 나뭇가지에 걸려 비를 맞는다

 -유정임 시집 <봄나무에서는 비누냄새가 난다>에서.

 

유정임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봄나무에서는 비누냄새가 난다>.

 

 

감상

뱀이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들의 정신 속에 깊숙이 숨어들어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성서 속에 그려진 사악한 뱀과는 달리 우리 민족에게는 이미 신라의 혁거세 시기부터 성서와는 별개 이미지인 뱀의 존재가 살아온 듯하니 가히 신화적이라 볼 수 있다.

뱀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영물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는 아마도 불사와 재생의 이미지로 더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뱀의 불사와 재생의 속성에 빠져 들지 않으려다가 엉뚱하게도 평생 원죄의 심판에 걸려들고만 이야기를 재미있고 비교적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천지가 뱀이었던 시절에 뱀에 관한 어른들의 말들도 무성했던 탓이다. 끝내 잡아 깨끗하게 처치해야만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꿈속에서도 해꼬지하지 못하리라는 우직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유 시인은 늦깎이로 시단에 얼굴을 내밀었으나 시단의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건강한 시인이다. 흑사의 해를 맞이하여 모든 사랑과 연애에 길한 일들이 많을 거라 하니 아마도 올해는 좋은 인연들이 많이 이루어져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대해 본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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