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봉선화

 

도레미노래방 지나

진촌양품점 지나

일출 맞으러

심청각 오르는 길

 

주인도 떠나고

울타리도 없는

그 집 마당

 

밤새

얼마나 큰 손님 다녀가셨는지

흐드러진 몸빛

해보다 밝다

-류제희 시집 <소금창고>에서

 

류제희

 

당진 출생.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산벚꽃과 옹달샘이 있는 풍경>, <논현동 577번지> 외. 내항문학 동인.

 

시를 읽다가 만나는 기쁨이 있다. 생각의 깊이를 느끼거나 전혀 다른 생각을 만나게 되면 마치 우주로 날아가는 듯 기분이 좋기도 하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기가 막힌 표현을 발견하면 혼자 무릎을 치기도 한다. 이런 맛에 시를 읽는다. 비록 시가 돈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시는 돈보다 더 커다란 수확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너무도 관능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인의 뒤를 따라간다. 노래방을 지나고, 양품점을 지나고, 심청각에 따라올라 일출을 보려다가 외진 곳에 떡하니 흐드러져 핀, 일출보다 더 밝은 봉선화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일출이 별 것이냐, 음양의 조화로 흐드러진 몸빛 봉선화의 건강한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생명의 경이로움이 아니겠는가. 또한 보는 이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았다가 기가 막힌 진짜의 놀라운 얼굴을 보여주는 것, 이런 것이 시의 마술이 아닌가 싶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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