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원장 측근 기용, 최필립 이사장 그대로... 방송장악 '서막'

▲ 방문진 도착하는 김재철 MBC사장 김재철 MBC사장이 26일 오전 자신에 대한 해임안이 논의될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김재철 MBC 사장이 26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의해 전격 해임됐다. 만시지탄이지만 사필귀정이다. 그가 공영방송사 수장 자리에 앉아 있었던 3년은 길고도 혹독한 세월이었다. 누구보다 MBC 구성원들에겐 지나온 3년이 가장 고통스런 신산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복기해 보면, 그가 2010년 3월 MBC 사장에 취임한 이후 공정방송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구성원들이 공정방송 회복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와 최장 기한인 170일 동안 파업을 벌였지만, 김 사장은 구성원 200여 명에게 해직과 징계 등의 칼날을 휘둘렀다. 온갖 권세를 동원해 맘껏 휘둘렀다. 그 결과 그의 MBC 사장 재임시절 '최장 파업', '최고 소송', '최고 해고'란 진기록을 남겼다.

100명 이상의 MBC 노조원들이 방송사에서 쫓겨난 것은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로 남는다. 국내 언론시장의 황폐화와 민주주주의 퇴보는 물론 방송사 공정성 파괴로 이어진 것은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끈질긴 방송장악 때문이다.

"MB를 위한 방송 'MB씨'" 3년... 신뢰도 '곤두박질'

낙하산 사장으로 취임한 방송사 사장들이 저지른 죄과는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그 중 MBC는 신뢰도와 시청률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면서 공영방송사 이미지가 만신창이가 됐다. 오죽했으면 MB를 위한 방송 'MB씨'라는 오명을 들었을까. 정권에 대해 불리한 사안은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행태로 불공정보도를 수미일관되게 했다.

지난 대선기간에는 최악의 편파보도로 따가운 눈총을 샀다. MBC의 대선보도가 트위터리안과 누리꾼들이 7차례 선정한 '최악의 대선보도'에서 무려 5차례나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런 와중에 김 사장은 무용가 출신의 한 여성 사업가에게 일감을 몰아주거나 업무와 무관한 특급호텔·명품가게 등에서 법인카드 사용을 남발한 것이 내부에서 제기돼 경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또 감사원의 카드 사용내역 제출과 국회 출석요구를 거부해 고발당했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귀금속·상품권 구입·호텔 이용 등 노동조합이 제기한 의혹 해소에 필요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 제출을 거부한 김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설립 이래 MBC 사장이 임기를 1년여 앞두고 해임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껏 버텨온 게 신통할 정도다. 그의 해임으로 그동안 쌓여온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MBC 지분의 70%를 보유한 방문진과 나머지 30%를 보유한 정수장학회를 들여다보면 얼마든지 제2 또는 제3의 김재철의 등장을 예견할 수 있다. 우선 방문진 구조를 들여다보자. 

MBC 사장 임명하는 방문진 이사진, 방통위원장이 임명

▲ 방문진 도착하는 이진숙 MBC본부장 이진숙 MBC기획조정본부장이 26일 오전 김재철 MBC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결정되는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방문진은 MBC의 대주주로써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MBC 사장의 임명권, 해임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방문진 이사들의 임명권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갖고 있지만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데 문제가 크다.

대통령은 방문진에 얼마든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방송사 사장에 낙하산을 언제든지 내려 보낼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아직도 작용하고 있다. 정치적 독립성과 방송의 공정성 확보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난 5년 이명박 정부는 이를  권력유지에 십분 활용해 왔다.

방문진을 보라. 전체 이사 9명 중 여당 추천 이사 6명,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돼 친여성향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뿐만 아니라 KBS 사장 선임과 직결된 KBS 이사회 구성도 문제다.

11명의 이사로 구성되는 KBS 이사회도 방통위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KBS 이사회 역시 정부·여당 측 7명, 야당 측 4명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어 친정부·여당 편향적 인사가 사장에 임명될 공산이 크다. 이 역시 공영방송 정상화와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 3년간 MBC 김 사장의 해임안이 세 차례나 상정됐지만 모두 부결된 것도, KBS가 낙하산 사장 때문에 홍역을 치른 것도 바로 이런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MBC 경영을 감시 감독해야 할 방문진이 김 사장의 비리를 싸고돌며 사태를 키운 주역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방문진이 달라지기 위해선 가장 먼저 정치적 독립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최고 권력층의 입김이 스며들지 않도록 이사진 구성은 물론 운영체제 등을 대대적으로 수선해야만 한다.  대통령의 눈치나 보면서 거수기 노릇을 하도록 방치한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2의 김재철 사장과 같은 인물이 낙하산으로 투하돼 끔찍한 사태가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이 초기부터 심상치 않다.

방통위원장 또 대통령 측근 기용...'최시중' 악몽 떠올려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박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내용을 얼핏 보면 원칙과 소신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은  방통위원장에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이자 <동아일보> 출신인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방통위원장에 대통령의 측근을 앉히려는 것에서부터 방송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MB정부 5년 동안 보아왔던 '방통대군 최시중'의 악몽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의 방송통신 융합 등 ICT(정보통신기술) 정책을 전담할 2차관에 KT 부사장 출신을 임명한 것도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는 말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통령이 취임하던 지난달 25일 사퇴 의사를 전격 밝혔던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그 후 한 달이 넘도록 이사장 자리를 유지하면서 월급까지 받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자진사퇴 의사를 언론에 밝힌 뒤 최근까지 정수장학회 사무실로 출근한 배경이 수상쩍다. 정수장학회는 지난 대선기간 내내 수많은 의구심을 증폭시키면서 당시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로 작용했다.

결국, 방문진 이사진 구성과 정수장학회가 이럴진대 MBC 김 사장 퇴진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락으로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고 파괴된 공정성을 복구하기 위해서 MBC가 당장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독립을 위한 법적인 장치 마련이 가장 시급하다. 지금 현재로썬 제2, 제3의 김재철, 또는 더 지독한 낙하산 사장의 등장을 막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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