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이사장 또 측근 기용 무리수

"정수장학회는 저와 관계가 없어요."

제18대 대통령선거전이 무르익던 2012년 10월 15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추진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선 경선 초반부터 줄곧 이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때마다 같은 대답이었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1962년 부산의 재력가인 고 김지태씨를 겁박해 부일장학회·부산일보·문화방송 주식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65%를 강제로 헌납 받은 뒤 설립한 재단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군사독재정권이 강압으로 빼앗은 '장물'임이 국정원 과거사위 등의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정수장학회 새 이사장에 쏠리는 의혹의 눈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
ⓒ 조재현

 


그런 장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깊숙이 관여했다. 그런데도 "나와는 무관하다"고 매번 이야기하고 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받은 보수가 11억3000여만 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장학사업이란 목적사업에 비추어 보수가 과다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거기다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최필립 이사장이 사퇴의사를 밝혔으며, 최 이사장 후임으로 또 다시 대통령의 측근이 선임됐다. 참으로 공교롭고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수장학회는 최근 이사회를 열어 사퇴한 최 전 이사장의 후임으로 김삼천 전 상청회 회장을 선임했지만 상청회는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 인사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부터 시선이 곱지 않다. 김삼천 신임 이사장은 상청회 회장을 두 번이나 지내는 등 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정수장학회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해왔지만, 신임 김 이사장은 대구출신인데다 영남대를 졸업한 뒤 상청회 회장을 맡았고, 박 대통령이 30년 넘게 이사장으로 재직한 한국문화재단에서 2009년부터 3년간 감사를 지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상청회 회장 자격으로 한 해를 빼고 매년 정치후원금 최고한도인 500만원씩 모두 3000여만원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장학회가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 중 하나가 바로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이다. 그런데 최 전 이사장의 뒤를 이어 또다시 측근 인사가 수장 자리를 맡게 됐으니 "정수장학회를 대리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하다. 청와대 쪽은 "김 이사장의 선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털끝만큼의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믿기는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언론장악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점에서 우려가 앞선다.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 이사장까지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실은 언론장악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 직전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 문제를 공론화하며 편집권 독립을 요구했던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이 해고당한데 이어 신문사 종사자들이 끊임없이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을 요구했지만, 당시 박 후보쪽 대답은 매번 똑같았다. 박 대통령은 무려 6개월여 동안 긴 파업이 이어졌던 MBC사태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후보시절에는 표를 의식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되면 뭔가 달라져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끝내 '제2의 최필립' 같은 인물이 새 이사장으로 선임되기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결국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은 물건너 가는게 아닐까

또 다시 언론장악? 끔찍하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 되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문득,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TV토론회에서 "이명박 정부는 오랜 성과를 다 까먹었다. 그 때 박 후보는 무엇을 했나?"란 상대 후보(문재인)의 질문에 자신만만하게 던진 당시 박 후보의 대답이 떠오른다.

당시 온라인에는 관련 패러디가 봇물처럼 확산됐다. "김 과장, 왜 이렇게 일을 이렇게 하나." "그래서 제가 사장 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등의 문답이 화제가 되기도 했을 정도다. 사오정 시리즈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은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웃음대신 걱정이 앞선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수많은 소셜 미디어들과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인사탕평책'은 고사하고 '수첩인사가 빚어낸 인사참사'란 비판과 함께 '언론장악 음모가 서서히 발톱을 드러나고 있다'는 따가운 질책이 나오자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정수장학회와 관련된 문제들만 종합해 보더라도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서는 사오정처럼 저렇게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많은 국민들은 권력의 언론장악이 얼마나 무서운 탐욕인지, 얼마나 무서운 민주주의의 해악인지 지난 5년 동안 처절하게 학습했다. 그 시간은 5년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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