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개혁 없이 '제2의 최시중·제2의 김재철' 막지 못해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MBC 새 사장에 김종국 대전 MBC 사장을 선임했다. 걱정과 한숨, 불안과 경고의 목소리가 방송사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MB정권 5년 내내 MBC가 'MB씨'로 표현될 정도로 권력의 시녀역할을 한 '김재철 체제'를 이끌던 인물이 새로운 사장에 선임된 것이다. 이번에도 방문진이 그 총대를 멨다. 신임 김 사장은 MBC 사장 최종 후보군에 오른 4명 가운데 안광한 부사장과 함께 김재철 전 사장과는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특히 새로 선임된 김 사장은 2010년 진주·마산 MBC 통폐합을 주도하면서 노조원 10명에 대해 해고 등 중징계를 내린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됐던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PD수첩> 폐지 등에서 촉발한 방송사 파업을 '정치파업'으로 규정하는 등 노조에 대해 편향적 시각을 지녀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냉랭한 노사관계가 더욱 싸늘해지지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문진, '김재철 아바타' 사장으로 선택

▲ MBC 김종국 신임 사장은 '제2의 김재철' 반발 MBC신임사장에 김종국 대전MBC사장이 선임된 가운데 3일 오전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회원들이 여의도 MBC본사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김재철 전 사장과 결탁해 공영방송의 가치를 훼손한 김종국 사장은 '제2의 김재철''이라며, 김 사장을 선임한 방송문화진흥회를 강력규탄했다.
ⓒ 권우성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그를 '최장 파업', '최다 해고', '최고 소송'의 주인공이었던 김재철의 아바타로 분류하며 신임 사장으로써 '부적격 인물'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런 상황을 만든 일차적 책임은 방문진에 있다.  한마디로, 들끓는 반대 여론에 못 이겨 김 전 사장을 내몬 방문진이 슬그머니 과거체제로  MBC를 되돌린 셈이다. 많은 국민과 시청자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음은 불문가지다.

'김재철 체제'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종국 체제의 MBC가 과연 지난 3년간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전 사장의 추문과 불법, 비리들로 만신창이가 된 MBC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상식적인 현상이 또 발생한 것일까?  방문진은 왜 방송사 안팎에서 그토록 반대했던 인물을 새 사장 자리에 앉힌 것일까? 마음대로 노조원을 해고하는 등 공영방송의 생명이라 할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멀리한 '김재철 체제' 유지에 앞장섰던 인물을 사장으로 선임한 배경은 뭘까?

앞으로 노사관계를 개선하기보다 더욱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속셈이 아닌 바엔 이런 결정을 내놓을 순 없다. 이는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유린한 김 전 사장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결정이다.

이 때문에 '제2의 김재철'이란 평가를 받는 신임 사장의 앞날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사회단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은 MBC 사장 선임 직후 '김재철 체제' 연장을 규탄하는 모임을 잇따라 열고 "김재철 부역자'가 MBC 사장이라니, '언론장악' 시도 당장 멈추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MBC 내부에서도 방문진의 새 사장 선임에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김 신임 사장에게 '김재철 체제를 청산할 것'을 주문하면서 MBC 정상화 7대 과제를 제시해 눈길을 끈다.

MBC본부는 김재철 체제 3년에 대한 전면감사, 무너진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공정성 회복, 본사와 지역사 간의 수직적 구조 고착화 해결, '일을 위한 조직'으로 개편, 정상적인 노사관계 회복, 해고자 복직 및 부당징계 무효화 등을 과제로 내세웠다. 노조 측은 이와 함께 "우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순간에도 원칙 있는 길을 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나락으로 곤두박질한 공정성과 신뢰성은 물론 노사관계 회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스러운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두가 따지고 보면 친여 성향의 방문진 이사진들이 수적우위를 앞세워 결정한 '김재철 체제의 연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현행 방문진 구조와 공영방송 사장 선임 방식의 한계가 다시 한 번 명확해진 셈이다. 여당 추천 이사 6명,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된 방문진 이사회의 구조상 여당 뜻에 반하거나 정권에 비판적인 어떤 개혁적인 인물도 사장에 선임될 수 없다.

이는 국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친여 성향 인물이 다수인 방문진은 물론, 11명 이사들 중 무려 7명이 여당 추천 인사들로 구성된 KBS이사 선임 및 관리·감독 권한까지 지니고 있는 방송통신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데 문제의 원인이 있다.

'제2의 최시중'·'제2의 김재철' 등장, 막아야   

 MBC 신임 사장으로 내정된 김종국 대전MBC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열린 사장 후보 면접을 위해 방문진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공영방송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외치면서 그 위의 관리·감독기구인 방통위가 대통령 직속기구이며, 그 수장을 장관 임명하듯 대통령이 임명하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 하에서는 공영방송의 독립은 말잔치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조직과 다를 바 없는 방통위와 그 하부의 방문진과 KBS이사회의 정치적 독립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립성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뿐 아니라 아울러 여·야 추천인사 동등배분 또는 전문가 및 시민사회단체 참여 등의 제도적 보완조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을 답습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MBC 새 사장 선임을 앞두고 높았던 것도 바로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점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출범직후 친박의 정체성을 드러내 온 인물을 방통위원장에 버젓이 임명해 '제2의 최시중' 등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공영방송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구 '오프컴'(Ofcom)과  방송의 독립성과 불편부당성 보장을 최우선 목표로 여기는 프랑스의 '시청각위원회'(CSA : Conseil Superieur De I'Audiovisuel)를 박근혜 정부가 모델로 삼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소망일까?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은 민주주의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특히 전파의 희소성을 지닌 방송이야말로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이제라도 마련해야 한다. '제2의 최시중'과 '제2의 김재철'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비등한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구조적 모순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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