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사건은 박근혜 불통 인사가 부른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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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006년 <문화일보>에 쓴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얼굴"이라는 내용의 칼럼이 회자되고 있다.
ⓒ 문화일보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이라는 비유는 포괄적이지 못하다.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입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기 때문이다."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이 <문화일보> 논설위원으로 있을 당시인 2006년 4월 25일자 신문에 쓴 칼럼 내용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 역할 뿐만 아니라 '얼굴'이자 '분신'이라고까지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이어 그는 "(대변인은) 내정과 국제정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경륜과 혜안의 재사(才士)요 전략가, 해외 TV보도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정부 관리인만큼 준수한 용모에다 영어정도엔 능통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의해 그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러나 대변인에 발탁된 지 70여일 만에 불명예스럽게도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됐다. 다른 곳도 아닌 미국에서, 그것도 많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그를 대변인으로 발탁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 수행 중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성추행 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불통 인사' 고집하더니 기어코 '참사'

청와대는 대통령 방미 중 우리나라 대사관 인턴사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중도 귀국한 윤 대변인을 전격 경질했지만,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고위공직자가 부적절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국가의 품위를 크게 손상시켰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연일 이 내용을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미스런 사건의 중심에 선 형세가 7년 전 언론인으로서 그가 주문했던 대변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지금 국내외 언론에 비치는 있는 그의 모습에는 어떤 경륜과 혜안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초라한 모습과 해괴한 변명만이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성추행 의혹 사건에 이어 대변인 경질에 이르기까지 이번 사건은 박 대통령의 '불통'과 '오기'로 가득 찬 인사가 빚어낸 '참극'이라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국가적 망신을 불러일으킨 이번 사건을 윤 대변인 개인의 '불미스러운 일'로 치부하며 어물쩍 발뺌하려는 태도를 보여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빚어낸 '인사 참사'라는 점에서 국민에 대한 사과가 우선인데도 청와대는 '개인적인 일' 운운하며 진실게임 공방으로 사건을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

그동안 윤 전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 들어 '나홀로·불통 인사'의 상징적 인물로 꼽힐 만큼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물이다. 극우논객이었던 그는 '막말'과 '망언'으로 야권 인사들을 폄훼하는가 하면, 국민의 절반을 '반 대한민국 세력'으로 규정하는 등 언론계와 정치계를 오간 전형적인 '폴리널리스트'였다.

그런 그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이후에도 기자들에게 '받아쓰기'를 강요하고 '폭언'을 일삼는 등 언론을 정권의 앵무새 취급을 해 쉼 없이 자질논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그에 대한 모든 비판을 묵살한 채 따가운 여론을 외면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실 방미 전부터 청와대 내부에는 윤 전 대변인의 행실에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미국에 데려갔다. 그러더니 결국 '방미 중 성추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당시 저녁 술자리에 인턴 여성뿐 아니라 운전기사도 합석해 "성추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반박하는 등 '자신은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결과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라고 할 땐 언제고 대통령과 국가에 온갖 먹칠을 가한 그가 억울하다며 국민 앞에 호소하는 모습이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자신은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순 없는 노릇이다. 이번 사건은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의 품격을 훼손한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 사법당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있을 경우 정부는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 전에 우리 사법당국도 법리검토를 거쳐 또 다른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론도 이번 사건을 호도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건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첫 번째 미국 순방을 동행 취재한 국내 기자단은 역대 두 번째 규모로 많았다. 방미 두 달 전부터 화제가 됐을 정도다. 지난달 청와대는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하는 기자단이 신문과 방송, 통신 등 취재기자를 포함해 모두 78명으로, 2008년 4월 역대 최대 규모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미국 순방(기자단 85명)에 이어 두 번째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KBS·MBC·SBS '윤창중 기자회견' 생방송 안 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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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려차원에서 툭 쳤을 뿐" 윤창중 '성추행' 부인 박근혜 대통령 미국 방문 기간 중 대사관 여성인턴 성추행 사건으로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 하림각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사건 발생 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귀국을 지시해 따랐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자신은 여성 인턴에게 격려 차원에서 허리를 '툭' 쳤을 뿐 문화적인 차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 권우성

 


대통령 방미에 언론의 관심이 컸던 이유는 종편채널이 새롭게 가세한 데다, 어느 때보다 한·미 정상회담과 대북정책 공조에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통령 방미에 동행한 언론사 기자들이 이번 사건을 정확하고, 발빠르게 보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외신이나 미국의 한인 여성 인터넷 사이트에서 더 앞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모양새다. 

더욱이 미국발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 고조되던 지난 11일 윤 전 대변인이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을 때도 국내 지상파방송 3사인 KBS·MBC·SBS는 이 내용을 생중계로 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편만도 못했다.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지상파방송 3사가 사안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KBS는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 보도시 배경화면에 청와대 브리핑룸이나 태극기를 노출시키지 말라는 내부 지시를 내려 '신 보도지침'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시간에 이들 지상파 방송사들은 기존에 편성돼 있던 정규 프로그램을 그대로 방송했으며 관련 내용을 자막으로만 짧게 처리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여론에 귀 막고 독단과 고집을 부려놓고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13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공식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방미 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국민 여러분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일로 동포 여학생과 부모님이 받았을 충격과 동포여러분 마음에 큰 상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 사과로 등돌린 여론이 잦아들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박근혜 정부 인사 실패 후폭풍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사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 인식에 일대 전환이 없는 한 제2, 제3의 '윤창중 사건'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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